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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밴쿠버문학] (동화) 편병과 꼬마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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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1-23 09:16 조회6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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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문인협회밴쿠버지부회원 이정순


‘이놈! 여기는 왜 자꾸 기웃거려!’


그놈이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어. 머리가 희끗하고 얼굴 주름이 가득했지만, 눈 밑에 흉터와 절고 있는 다리. 전기에 감전된 듯 온몸이 뻣뻣해졌어. 요즈음 아이들은 골동품이나 역사에 별 관심이 없어. 오늘따라 아이들이 없는 박물관은 더 썰렁했어.


그때 복도 쪽에서 작은 아이가 걸어오고 있었어. 그놈이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달아났어. 기둥 뒤에서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었어.


‘저 놈을 붙잡아야 하는데, 어떻게 저 아이한테 알리지.’


내가 갇혀 있는 유리장 안을 비추고 있는 LED 빛이 흐릿했어. 아이는 내 앞에 와서 멈춰 서더니 말했어.


“전등이 흐려 잘 보이질 않네.”


“얘야, 가까이 오렴.”


“으악, 귀, 귀신이야!”


아이가 놀라서 뒷걸음질 쳤어.


“놀라지 마. 난 귀신 아니란다.”


“그… 그럼 뭐야?”


새파랗게 질린 아이의 마음을 진정 시키려고 얼른 말했어.


“나, 나는 편병이란다.”


“편병이라고?”


“거기 앞에 글씨를 읽어 봐.”


<조선백자 편병>


“편병이 말을 한다고?”


“그려.”


“어떻게 말을 하냐?”


“소망이 간절하니까 신기한 힘이 생기더라.”


“소망?”


안경을 쓴 아이는 제법 똑똑해 보였어. 내가 이 아이를 선택하길 참 잘했어. 꼬치꼬치 묻는 게 예사롭지 않거든.


“조선백자 편병과 막사발, 조선 세종 때 현감을 지낸 송헌의 어머니 무덤에서 도벌꾼에 의해 출토.”


아이는 유리장 앞에 붙어 있는 내 신상에 관한 내용을 또박또박 읽었어.


“나는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더운 여름에는 서늘하게 하는 힘이 있지. 내 몸이 나쁜 독성을 걸러내어 건강한 음료를 만들어 주는 역할도 했거든. 이래봬도 옛날엔 높은 사람 집에서 알아주는 편병이었건만…….”


“재미있겠다. 그 이야기 좀 더 해 줄 수 있어?”


아이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비췄어. 나는 얼른 내 기를 아이가 들고 있는 스마트 폰에 쏘았어. 화면이 켜졌어. 아이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어.


‘편병의 작은 주둥이는 밖으로 살짝 벌어져있고, 동그랗고 하얀 몸통에는 흙색의 연꽃이 줄기를 타고 움직이는 것 같이 새겨져 있다. 밑에는 주둥이보다 넓고 굽이 있는 다리가 몸을 받쳐주고 있다. 주인과 함께 무덤에 묻힘.’


“기록되어 있는 나의 오백 년 역사야. 아까 여기 있던 그 할아버지가 오래전에 나를 훔쳐 일본으로 빼돌리려고 했어. 나와 벗이었던 몇몇 도자기는 돌아오지 못했고.”


“정말요?”


아이는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어. 나는 아이가 관심을 보이자 밝혀지지 않은 내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어,


“나를 만든 도공은 천한 신분이었지만, 임금님도 알아줄 만큼 재주 있는 사람이었어. 도공과 형제같이 지낸 현감 송헌의 어머니도 도공을 자식같이 대했어. 근데 현감의 어머니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게 되었지.”


“그래서요?”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어갔어.


“그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도공이 ‘온청정성’의 마음으로 만들었던 편병이 나야. 도공은 현감의 어머니를 어머니처럼 잘 섬기겠다는 뜻으로 나를 만들었어. 내 몸에는 도공의 마음과 혼이 잘 깃들어 있어. 어머니는 내 안에다가 감식초를 넣어 물에 타 마셨어.”


“병이 완치되었나요?”


“그려, 신기하게도.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더 애지중지했지.”


그때의 행복한 기억이 되살아났어. 하지만 행복도 잠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어.


“현감의 어머니는 이삼 년 뒤 세상을 떠났어.”


“현감이 엄청 슬펐겠어요.”


“그려, 현감은 당연히 슬퍼했지만, 더 슬퍼한 사람이 있었어.”


“아들보다 더 슬퍼한 사람이 있었다구요?”


마음씨 곱고 가난한 사람을 잘 돌보는 현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마을은 깊은 슬픔에 빠졌지. 제일 많이 슬퍼한 사람은 현감이 아니라 도공이었어. 물론 효자 현감도 많이 슬퍼했어. 도공은 고아나 마찬가지인 자신을 거두어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엄청 컸던 게지. 그래서 도공은 순장을 자처했지. 나도 함께 무덤 속에 묻혔고.


“도벌꾼에 의해 오백 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됐어.”


“그럼 그 도벌꾼이 고마운 것 아니에요?”


“귀한 문화재를 개인의 목적으로 훔쳤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 또다시 훔치려 왔다는 게 더 큰 사건이고.”


“저 기둥 뒤에 숨어 있는 도굴꾼을 잡아야한다는 소망이었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잡을게요. ”


“저놈들은 돈이 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 빨리 도굴꾼을 잡아야 해.”


“그 할아버지가 도굴꾼이 확실히 맞아요? 증거 있어요?”


“확실해!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얼굴 흉터는 변하지 않았어! 쉿! 이쪽으로 오고 있어. 빨리 기둥 뒤에 숨어.”


도굴꾼이 내가 전시된 유리장 앞으로 왔어. 나는 오금이 저려 가만있을 수가 없었어,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렸어. 내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어. 그놈의 눈을 똑바로 보았어. 그가 흠칫 놀라는 듯했어. 눈빛이 흐릿하고 옆 눈으로 훔쳐보는 게 나를 훔치러 온 게 분명해. 그놈은 다리를 절면서 내 앞으로 오더니 내 발밑을 샅샅이 살폈어. 나는 그 아이와 교신했어.


‘지금이 기회야.’


‘걱정 마요. 내가 잡을 게요.’


‘조심 혀. 그놈은 흉악한 놈이여.’


그때 아이 엄마 아빠가 가까이 오고 있었어.


“아빠, 도굴꾼이에요.”


“무슨 소리야?”


“저기요. 저 할아버지요? 아까부터 저 기둥 뒤에서 저 편병만 보고 있었어요. 유리장을 부술지도 몰라요. 저 외투 호주머니를 보세요. 흉기를 숨기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호주머니가 불룩하잖아요.”


“하하! 미래의 탐정님! 또 수사 거리를 찾으셨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실 건가요?”


“제가 잡을 테니 지켜보세요.”


그때 도굴꾼이 뭔가를 주워 몸을 일으켜 세울 때였어. 아이는 손가락으로 권총 쏘는 시늉을 하며 큰 소리로 말했어.


“꼼작 마! 손들어요! 이 도자기 또 훔치려 온 거죠?”


순간 도굴꾼이 흠칫 놀랐어.


“꼬마야, 나는 떨어진 단추를 찾고 있었던 게야.”


“곤이 무슨 말버릇이야. 죄… 죄송합니다!”


곤이의 엄마는 허리를 몇 번이나 숙이며 사과했어.


“죄송합니다. 어르신! 우리 애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곤이 아빠도 머리를 깊숙이 숙이고 사과했어.


‘어, 맞는데…….’


“아… 아니오.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전에 도굴꾼 일을 잠깐 한 적이 있어요.”


“네?”


곤이의 엄마 아빠는 너무나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어.


“삼십 년 전에 아내가 너무 아픈데 병원비를 낼 길이 없었어요. 그때 친구가 찾아와서 동업하자고 했어요. 한 건이면 엄청난 부자가 될 뿐만 아니라 아내도 살릴 수 있다고 해서 꼬임에 빠지고 말았지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심정으로요. 편병은 제가 가졌고, 다른 것들은 친구가 가졌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가 어떻게 이 일을 아는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편병을 무덤에서 훔쳐 오던 날 이미 아내는 죽고 말았어요. 아내가 죽자 이 편병은 내게 아무 쓸모가 없어진 거지요. 당장 경찰서로 달려가 자수하고 죗값을 받았지만, 귀한 문화재를 훔쳤다는 죄책감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답니다.”


“아, 그러셨군요.”


도굴꾼은 유리장 안에 있는 나를 세심하게 살피며 울먹였어.


“이 편병이 그때 훔쳤던 물건이에요. 아내가 생각날 때마다 편병을 보러 오지요.”


도굴꾼은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았어. 무덤에서 도굴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그 죗값을 아내가 대신 받고 떠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어.


“엉엉! 슬퍼요.”


곤이의 아빠는 두 팔로 아이를 꼭 껴안았어. 그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달달한 수정과를 머금은 것처럼 느껴졌어.


“곤이라고 했냐? 이 편병이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너를 불렀겠니? 이젠 이 할애비도 편병에게 용서를 빌고 싶구나.”


그 도굴꾼이 유리장 안에 있는 내 앞으로 더 가까이 왔어.


“미…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도굴꾼의 진심이 느껴졌어.


‘근데 저 흉터는, 또 다리는 왜 절지?’


“이 흉터는…….”


도굴꾼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말했어.


“아내의 병을 낳게 하려고 깊은 산속에 약초를 켜려갔다가 그만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나뭇가지에 이 상처를 입었지요. 다리도 그때 다친 거고요.”


나는 도굴꾼의 사연을 알고 나니 마음이 안타까웠어.


“할아버지, 편병도 아마 용서했을 거예요.”


“그… 그럴까?”


도굴꾼은 감정이 복받쳤는지 목소리가 떨렸어. 그리고 나에게 깊이 머리를 숙이고 나서 곤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총총걸음으로 박물관 밖으로 나갔어.


“아빠, 먼저 나가 계세요.”


“하하! 미래의 탐정님 편병하고 인사하고 오려고?”


“곤아, 고마워!”


“에이, 쑥스럽게. 이제 안심해요.”


곤이의 작은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었어.


“박물관에 있는 것도 괜찮네. 너처럼 좋은 꼬마 친구도 만나고.”


“편병은 멋져! 그래서 사람들이 널 보러 오는 거야.”


“나를 보러 온다고?”


“다음에 올 때는 친구들 데리고 올 게.”


오늘은 기쁜 날이었어. 박물관 공기는 아까와는 달랐어. 내 몸에 그려진 연꽃에 빛에 반사되어 어둡던 유리장안이 환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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