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정원] 떼부장 유감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문예정원] 떼부장 유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의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1-30 09:21 조회1,273회 댓글0건

본문

758783364_ePJwUDNB_e5e1364a5dccc107a5d21fc81b03e336255576c6.jpeg

김의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2020년 초에 시작된 코로나 펜데믹으로 모든 사회활동이 제한되어 있다가 2021년 초부터 실시한 백신 덕으로 어느 정도 풀리기 시작했다. 2022년 11월 현재 5차 백신까지 실시되어 모든 사회활동이 거의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거리의 교통량이나, 붐비는 식당, 쇼핑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여 개월이 넘는 격리 기간을 끝내고 처음으로 지인들을 만났을 때 첫 느낌은 대부분 몸무게가 늘었다는 것이었다. 원래 근수가 좀 나가는 필자도 수 파운드가 추가됐다. 항간에 “확찐자”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만화 속의 영웅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이 뚱뚱해서 제구실을 못 하는 풍자 삽화가 나 돌았다. 친구들과 만나니 화제의 중심이 한동안 몸무게 조절과 노인 건강이 되었다.

 

3형제 중에 중간인 필자는 날 때부터 체구가 컸다고 한다. 먹성이 좋아서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먹고 많이 먹어서 “욕심쟁이”, “배불뚝이”, “뙈지”등으로 불렸다. 그 뜻을 모르니 그저 내 이름인가 보다 하고 개의치 않았다. 지각이 나서 그런 식으로 부르면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니 그런 호칭은 사라졌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동년배 애들이 “뚱보” 또는 “뚱뚱이”라고 뒤에서 불렀고, 내 앞에서 들키면 가만두지 않았다. 같은 학년에서 제일 큰 키는 아니었지만, 옆으로는 제일 넓었고, 제일 키 큰애를 애들 보는 앞에서 씨름으로 넘어뜨린 후 나에게 감히 도전하는 애가 없었다. 어른들은 “떼부짱”이라고 불렀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니 그러려니 했다. 중고등 시절에는 대부분 처음으로 만나는 친구들이었고, 역시 몸무게 관계로 어릴 적 호칭이지만 지적 수준을 높인, 한문으로는 “돈형(豚兄)”, 영어로는” Porky”라는 호칭으로 통했다. 대학 시절에는 감히 별명을 부른 사람이 없게 되었다.

 

우리 때 (1957년) 중학교 입학시험에 체육 과목이 포함돼 있었다. 종목은 송구 공 던지기와 턱걸이였다. 초등학교 때 송구반에서 명 하프백을 했고, 우리 학교가 경기도에서 주최하는 초등학교별 송구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었다. 자신 있게 지정된 곳에 나아가 힘차게 던지니 최장 거리 선을 훨씬 넘는 곳에 고이 떨어져 실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철봉을 잡으니 팔이 몸무게를 감당 못해 몸을 비틀며 안간힘을 쓰다가 그냥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대학 입학 때 (1963)에도 체육 시험이 있어 100m 달리기를 했다. 소위 젖먹이 때 힘까지 동원해서 뛰었지만 16.5초의 기록을 냈다. 알고 보니 친구 중 내 기록이 제일 밑에 있었다. 입학한 후 몸무게도 줄이고 기록도 경신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숙사에서 지내며 남몰래 매일 운동장을 뛰었지만 별 열매가 없었다.

 

대학 졸업하고 3개월간 취직하여 근무하다가 해군 간부후보생으로 지원하여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을 때였다. 무섭게 생긴 해병대 대위(체구가 날렵하고 눈이 매섭게 생겨 “독사 ”라는 별명을 붙였음)가 대대장이 되어 우리를 보급 실로 인도하여 훈련복을 배부하는 일이 있었다. 훈련복은 대, 중, 소로 분류되어 각자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나에게 맞는 바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맞는 옷이 없다고 보고하자 대기하고 있으라 명령했다. 잠시 후 사병이 옷 한 벌을 가지고 왔고, 시도해 보니 여전히 단추를 채울 수가 없었다. 다시 가져가니 엄한 얼굴로 “네 몸을 맞춰!”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단추들을 모두 떼어서 가장자리로 옮겨 단 후에 겨우 잠글 수가 있었다. 훈련이 시작되니 별것 아닌 구실로 소위 기합 받는 일이 빈번했다. 필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뛰는 것과 잠 안 재우기였다. 조금만 잘하지 못해도 선착순으로 어느 지정 지점을 돌아오는 벌이다. 열심히 뛰어서 오면 끝에 따라오는 수십 명을 잘라 또다시 돌라는 벌이다. 처음 한두 번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늘 마지막 30여 명 안에 껴서 두서너 차례 더 뛰게 되어 엄청 힘이 들었다. 그래서 아예 마지막 차례까지 뛰기로 작정하고 슬슬 뛰었다. 훈련 2주 만에 그 꽉 찼던 바지가 헐렁헐렁하게 되었다. 몸무게가 나가니 잠도 많은 편이다. 낮 동안 호된 훈련 후 저녁 식사를 끝내면 피로하여 졸음이 쏟아진다. 해군에서는 취침하기 전에 잠자리가 규격에 맞는지 점검한다. 점검할 때 후보생 중에서 선발된 소대장이 큰 목소리로 “순검 15분 전!”하고 외친다. 후보생들은 침대로 올라가 규격에 맞게 담요를 덮고 누운 부동자세로 기다린다. 소대장은 “순검 10분 전!”하고 외친다. 이때가 되면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마지막으로 “순검!”하고 외친 후 소대장이 대대장을 모시고 순검이 시작되는데 조금이라도 하자가 발견되면 기압이 빠졌다고 벌을 내린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완전 무장하고 연병장 집합!”이라는 명령이다. 필자는 귀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들고 조용하면 되는데 코 고는 소리를 내게 된다. 순검 전에 코 고는 것을 빌미로 기압이 빠졌다고 전원 기합을 받는다. 한두 번 당하니 순검 전에 옆 침대 후보생이 깨어 있도록 계속 꼬집어 꼬집은 자리가 벌겋게 되었다.

 

호된 육상 훈련이 끝나고 4주간 함상 훈련이 있었다. 협소한 함상에서 해군이 개발한 체조를 매일 아침 실시했다. 육상 훈련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다. 4주가 지나니 헐렁했던 바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3년간 군 복무를 마치고 해군 중위로 예편하고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다. 캐나다에 오니 기후나 생활 조건이 운동 별로 안 하고 지낼 수가 있어 몸무게 느는 조건이 다 갖춰져 있었다. 상당한 근수가 첨가됐다. 취직 중에 휴가를 얻어 6년 만에 한국 방문해 부모님들이 주선한 맞선을 보게 되었고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리 집사람 말에 의하면 필자처럼 뚱뚱한 사람을 처음 보았다고 한다. 처음 단둘이 데이트할 때 내가 내 팔뚝을 보이면서 (여름이었음)“이게 다 머슬 (Muscle)입니다”라고 했단다. 전혀 기억이 없는데… 그래서 집사람이 남동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뚱뚱한 사람들은 다 그런 말을 한다고 했단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지나간 사연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남들보다 상당한 무게의 짐을 지고 사는 셈이다. 우선 몸무게를 줄여야겠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노인 건강 팁을 따라 옛날 보다 소식하고 매일 훨씬 많은 걷기를 하는데도… 친구들은 간식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데 강하게 부인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집사람이 몸무게가 나가면 관절이 상한다며 간식을 금지한다고 하니 순종하는 수밖에 …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8건 8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