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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탄포포의 바람 결 -네가 내 곁이었을 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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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1-17 15:17 조회5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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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돈 시인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



탄포포*로 배웅 나온 계단은 가파르다


육지로 오르고 싶어하는 모든 건

부레가 있어 잠수하는 꿈의 돛일 뿐


수심을 짐작할 수 있는 곳에선

바위틈 꼬리 살랑대는 해초들이랑

모래바닥 배영하는 물고기들이 잠잔다


바람은 늙은 노새의 등 한 번 쓸어주고

시지프스 신화 같은 높은 다락집의

단비도 꼬드기다 구름 뒤에 숨은 창가


붉게 핀 제라늄 화분 언저리로 놓여

붙박이 메뉴판과 왁자지껄 붐비다 간다


낮은 수평 가까이로 날갯짓하다가

모래밭 종종걸음으로 귀가하는 갈매기들

개펄은 낮게 깔린 수문 닫아걸어

포물선 바다는 팔 안쪽으로 굽어지고


하루 밑이 자주 뒤돌아 보인다는 건

현재의 발밑이 고르지 않은 탓일 거다


젖먹이 딸린 조금물 칭얼대는 바다의

물고기 비늘만큼 얼킨 눈물은 아니라도


알 굴리던 육추育雛의 발톱을 감추고

까마귀 떼에게 외려 쫓겨난 독수리처럼

먹이사슬과 무관찮은 들판을 떠나니

서성이던 이국 암초의 부표들이 떠있다


밤새껏 나를 가만 마주보던 가로등의

할아버지 돋보기 촉수같은 명암은

추억처럼 희미한 열정으로 눈곱 붙이고


비상을 도모하려다 중심 잃은 날개와

알게 모르게 마디 굵어진 불편에서

바람은 나를 길들이느라 여름내

좌표를 따로 그려 놓은 파도를 탔다


쇠똥구리 같은 하룻짐을 부려 놓은 뒤


이윽고 '그대 있기에 사랑이 있네'* 라고

한결같이 일러줄 바람과 마주치게 되면

탄포포 길 바람이었을 너 또한 만나게 된다.



* Tanpopo :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바다가 보이는 English Bay와 Danman 거리에 위치한 2층 일식집.

* 제랴늄(geranium)의 꽃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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