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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어린 아이와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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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6-04 10:48 조회4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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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힘 단상 2023년 6월 4일

 

어린 아이와 개미

 

 유월 초 이른 아침 공원 길 산책에 나섰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훈풍이 보드랍다. 하늘은 맑아 몇 점 흰 구름이 한가롭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키 큰 전나무가 가로수처럼 늘어선 길을 걸어서 햇볕이 드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귀전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청량하게 들린다. 깊은 숨을 들이쉬며 가늘고 길게 날숨을 쉰다. 평화로운 중에 영원할 것 같은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리저리 옮기던 시선으로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개미 한 마리가 제 몸집보다 커다란 먹이를 물고 힘들게 움직이고 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멀지 않은 곳에 개미집의 구멍이 보인다. 제 집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간다. 집 방향과는 조금 틀려 있다. 먹이에 가려서 가는 길을 제대로 못 찾은 걸까? 개미는 힘들다는 듯이 먹이를 내려놓고 잠시 멈추더니 집으로 들어가는 구멍을 찾았다는 듯이 다시 먹이를 물고 옮겨 간다. 개미집 입구에 겨우 도착은 했는데 먹이가 커서 쉽게 들어가질 못한다. 끙끙 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순간 한 어린아이가 다가왔다. 앉아있는 내게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데 하마터면 어린아이 발길이 개미집을 밟을 뻔 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니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이다. 

 설령 개미집을 밟았다 하더라도 밟은 아이는 미소를 지을 뿐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연 몰랐을 것이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개미는 아마 죽든지 다쳤을 텐데 무슨 일이 왜 벌어졌는지 모를 것이다. 다른 개미들도 다시 허물어진 개미집을 지을 뿐 슬퍼하거나 분노하지도 않을 거다.

 어쨌든 어린아이는 개미집을 밟지 않고 지나가서 천만다행이다. 눈앞에서 벌어질 뻔 한 재앙에 가슴이 철렁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개미는 힘들여 먹이를 끌고 개미집으로 들어갔고 어린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깔깔대며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은 조용히 다시 흐르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재앙을 당한다. 

 ‘이 일은 왜 벌어졌고 하필이면 왜 내게 일어났나?’ 시원하게 대답해 줄 사람도 없건만 몸부림치면서 재차삼차 묻는다. 누구든 개미집을 밟았다 하더라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거니와 밟은 사람 역시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햇살이 조금은 따사로워졌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공원 벤치에서 일어나 혹시 발아래 개미집이라도 밟지 않을까 염려하며 조심조심 걸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커다란 발 아래 놓여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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