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정원] 멋진 여름 나기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문예정원] 멋진 여름 나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은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7-25 10:21 조회431회 댓글0건

본문

 

 758783364_jv7Rbgtu_bc7eb7b809fed15e1c2eedf98673597b37f7403f.png

 

 이은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1960년대 여름은 전후 복구가 한창이던 때라 폭우가 내리면 도처에 산사태가 났다. 크고 작은 강물, 냇물들이 넘쳐 들 녘의 논밭과 가옥들이 물에 잠기고 떠내려 가는 난리의 반복이었다.

학교를 오가는 다리들이 잠겨 비를 맞으며 동동거리면 선생님과 동네 어른들이 나서 갖은 수단들을 동원해야 했다.

우리 작은 산골 마을은 지대가 높고, 일제 때 산 너머에 저수지를 만들고 냇가 둑을 따라 사방공사를 하고 포플러 나무를 심은 덕분에 아주 큰 폭우가 내려 구부러진 부분의 둑이 터지지 않으면 장마를 잘 넘기고 방학을 맞았다.

방학을 하면 매주 학교 도서실에서 마을 단위로 학생수에 비례해 책을 빌려 주어 우리 집 큰 감나무 그늘 아래 멍석을 깔고 모여서 돌려 가며 읽는 것이 큰 낙이었다.

오후에는 뒷산의 금광 폐광터에 우리들이 만든 나무 움막에서 요즘 말하는 캠프를 했다.

냇가에 내려 가 물고기를 잡아다 잡탕을 끓이고, 근처 밭이며 과수원에서 서리한 감자며 과일들로 디저트까지 즐기고 나면 저수지로 달려가 개 헤엄을 치느라 해지는 줄 몰랐다.

어른들 조르고 졸라서 허락을 받으며 날 잡아 열 댓 명이 집에서 싸 주신 감자나 주먹 밥 등을 둘러메고 시오리 먼 길을 걸어 소래 포구 갯벌에서 게나 조개를 잡았다. 밀물이 들어오면 개 흙에 범벅이 되어 석양을 뒤로 돌아와 곯아 떨어지는 멋진 여름이었다.

방학 끝날 무렵에야 밀린 숙제를 하느라 감나무 아래서 온종일 머리를 싸매도...

흑백 티비가 들어오며 대청마루로 자리를 옮겨 동네 애, 어른들이 모두 뉴스, 드라마에 빠지게 되었다. 세기의 권투며 아폴로 탐사, 대연각 화재 등등...

홍수에도 안전했던 우리 고장은, 티비로 다른 지방의 홍수 참사들을 지켜보며 복 받았다고 감사했다.

중학교 들어 갔다고 경부고속도로 대구 공사장과 진주 남강 댐 공사현장으로 특별한 여름맞이를 갔다가 밤새 내린 폭우로 홍수를 만났다.

집과 가축들이 둥둥 떠내려 가는 공포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홍수 여파로 수질이 나빠 열흘 가까이 설사에 시달리느라 근처 하동 장터 구경도 못하고 이틀이나 걸려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 왔다.

몇 년 뒤 경부고속도로, 소양 댐 등이 완공되었다.
매년 여름 장마 뉴스가 일상이기는 했어도 집이 떠내려가고 하는 참사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방송국에 들어 가 장마때면 소양 댐 위에서 먹고 자며 생방송 뉴스를 하면서도 60년대 홍수의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데 물 난리가 거의 사라진 지 반세기나 되는 지금, 산 사태며 지하도 침수 등으로 60년대 홍수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엉뚱한 뉴스에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정치꾼들의 아우성까지 놀라운 여름이다.

셀폰으로 실시간 구름의 이동이며 강수량 예고까지 받는 세상에 잘못된 정책과 관리 소홀로 인한 참사라니 어이가 없다.

여름은 더위를 피해 쉬는 것이라 착각하며, 먹고 마시며 쉴 수 있는 나라가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름은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모두에게 뜨거운 태양과 강렬한 바람과 장마를 통한 풍부한 수량으로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읽을 책을 싸 들고 자연에 돌아 가 많은 육체적 활동과 그곳 문화를 체험하는 서구인들의 여름 문화를 보면, 어느 계절보다 바쁘고 가성비가 높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우리도, 홍수 걱정 좀 접고
또 한 해 열심히 살 수 있게 지덕체를 건강하게 하는 여름을 계획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생은 해보지도 않은 젊은 이들이 힐링 휴가니, 버킷 리스트를 완수한다며 온 세상으로 인증샷을 찍으러 다닐 수 있는 멋지고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다.

 그렇지만 어둡고, 잃어버린 역사의 역경 속에 피 땀 흘려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 꼰대들이 포상으로 할 여름 나기 보다, 모두가 땀 흘려 미래를 위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건강한 여름을 맞았으면 좋겠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8건 4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