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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시간]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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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9-01 11:27 조회5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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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본향이 어딜까 자문하다 보면 종종 수도원이 떠오른다. 한국에 살면 캐나다가 집 같다가, 캐나다로 돌아오면 한국이 집이 되어버리는 신비. 어느 곳도 집이 되어주지 아니하다가, 모든 곳이 집이 되는 이주자의 삶에서 결국 본향은 하늘에 있다는 생각에 이끌려서다.


Mission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으로 오르는 언덕길을 좋아한다. 처음 캐나다로 왔던 시절에 이 근방에 살아서, 이곳은 캐나다의 나의 고향. 온전하게 그리스도와 사는 신앙인의 집이라 나는 가끔 이곳이 그립다. 오랜 시간 신실하게 자리를 지켜온 그 집은 존재만으로 안도를 준다. 수도원에서는 수도자의 경건한 삶을 목도할 수 있고, 그 경건함이 내게도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보이지 않는 신을 정말 사랑하느냐고 나직이 묻는 이곳에서, 신앙과 삶의 일치를 생각한다.


여덟 해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밴쿠버로 돌아왔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참 후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뜨겁게 살았다. 치열하고 복잡한 한국의 삶이 뭐가 그리 좋았냐고 묻는다면 캐나다와는 다른 농도의 정으로 묶인 연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긴 시간 켜켜이 쌓아 놓은 반짝이는 모국의 순간을 그리워하며 이제 다시 집이 된 캐나다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정적이 흐르는 수도원 예배당에 가만히 앉아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올려다본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색색으로 비치는 은혜의 빛 안에 물들면, 그리스도의 현존에 자유롭게 머물 수 있다는 소망이 생긴다. 정처 없이 사는 이 삶도 어디에 있든 제자리에서 평화를 간직할 수 있을 거란 소망.


수도원을 둘러보다 어디선가 나타난 수사와 대면했다. 그는 체구가 작은 노년의 수사였다. 그는 벽 한 면에 있는 사진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는데, 나는 그가 품고 있는 수도원에서의 세월을 듣고 싶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이곳에 들어와 수사가 되고 60년을 살았다. 여든이 다 된 그는 60년이란 시간을 담담하게 말했는데, 나는 가늠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한평생 세상에서 물러나 한 곳에서 신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 노동과 독서, 공동체를 이루는 신앙인의 삶은 어떤 것일까. 이토록 경건한 곳을 떠난 적이 없는 노 수사도 자신의 신앙과 씨름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떠돌던 나의 삶도 나누자 그 대비는 더욱 선명해졌다.


“당신을 기억하고 싶어요.”

자리를 뜨며 그의 이름을 물었다.

“저는 한나에요.”

“저는 Brother Emerick입니다.”


한곳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날카로운 생각에 휘둘려 믿음을 종종 놓아버리는 나는 경건한 신앙의 세월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한평생을 세속과 거리를 두며 살아온 노 수사와 길 위를 집 삼아 떠돌던 나, 우리에게 하늘은 돌아가야 할, 동향 (同鄕)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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