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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시간] 몸으로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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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9-27 03:29 조회4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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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피곤을 틈타 밀려오는 생각을 흩어 버리고 싶을 때 밖으로 나가 걷는다. 책상에 꼬박 앉아 있어 몸이 뻐근해지고 눈이 퍽퍽해질 때도 몸의 움직임이 간절하다. 손으로 하는 일은 쉽게, 자주, 큰마음을 먹지 않고도 몸을 사용할 수 있다. 손재주가 없어 손을 써야 하는 일에 날렵하지 못해서 그런지 손으로 하는 일을 동경한다.


같은 날, 두 사람이 손으로 만든 작품을 받았다. 한국에서 건너온 흑진주 팔찌와 밴쿠버 로컬에서 발견한 가죽 팔찌. 두 사람 모두 나를 위해 만들어서 내 손목에 딱 맞게 제작했다. 푸른 실크 실로 흑진주를 손으로 엮어 만든 팔찌는 오묘한 색을 띠었다. 한 알 한 알, 만드는 사람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모여 완성되기까지 수없이 만지고 닿았을 손길이 느껴진다. 마침 보낸 이가 강원도 속초에서 작업 중이다. 깊은 바다가 내 손목을 감싼다.


가죽 제품은 사용하는 대로 그대로 흔적이 남아 지난 세월을 담고 있어 좋아한다. 오래 사용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바래지면 고유한 멋을 더한다. 가죽의 정직한 속성이 좋다. 가죽을 모양과 크기에 맞춰 신중히 자르고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이은 가죽 팔찌가 내 손으로 왔다. 대체할 수 없는 손작업의 묵직함이 담겨있다. 팔찌의 한 면에는 의미 있는 이니셜이 각인되어 있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팔찌로써 자기 몫을 다 할 것이다.


핸드메이드 물건을 사랑하는 건 만드는 사람의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으로 이 물건을 만들었을까 헤아려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기계로 찍어내는 획일성을 거부한, 한 사람의 손길이 오래 묻은 시간에 경의를 표한다. 효율성을 따지는 보통의 소비와 다른 핸드메이드의 가치를 내내 매만진다. 두 물건에 새겨진 의미를 소중히 다루며 가까이 두고 오래 함께 할 것이다. 


두 팔찌를 한참 동안 살펴보니 글 쓰는 일도 손을 사용한다는 생각에 닿았다. 한 글자씩 모아 한편이 되는 글은 펜으로 꾹꾹 눌러쓰거나 키보드에 탈칵 탈칵 튕기듯 쓰는, 분명 손으로 하는 일. 마음과 생각을 모아 손끝으로 전달하면 하나의 글이 된다.  <한나의 시간>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허락된 나의 시간에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온 보석 같은 한인 이민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캐나다에서도 오래된 길과 반짝이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걸음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글을 짓는 일은, 두 다리와 손으로 하는 일. 인생에 몸이 하는 일을, 몸으로 찾아 몸으로 쓰는 일.


흑진주 팔찌: 일미오 @ilmioshop (한국)

가죽 팔찌: 브리즈 @breeze_leather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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