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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빛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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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영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10-03 13:40 조회6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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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영인 (시인,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 회원)



기어가는 개미가 올까봐

앞발을 뒤로 뒷걸음치면서도

촉촉한 검은 코를 연신 위아래로  

나란히 놓인 꿉꿉한 화분들       

흙냄새 가까이 길게 빼고 있다

 

들어올 생각이 없다가도

쿠키 하면 쏜살같이 오긴 하지만

마지못해 들어 온 것 맞나

배를 내놓고 많이 놀았다

콧소리 내며 웅크리더니

세상모르고 곤한 숨소리 낸다

 

일부러 칠한 듯 하얀 눈썹이 쌍꺼풀 위에

간간이 움찔 놀라며 눈을 뜨려 한다           

자면서도 가늘게 실눈 뜨며 나를 보고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어 귀도 세운다

 

바꾸어 입은 옷 어디 가냐고

묻기도 하고 문을 열고 가야 한다니

그럼 저도 데려갔음 하고                

너랑은 다음에 가자 달래보아도

아무 소리 없는데 더 크게 들리는 말

부드러운 털 살랑살랑

꼬리도 큰 소리로 말한다

 

뜨지 못한 눈 어미만 찾던

혼자 커 가는 거라고

그 어미 눈 맞춤만 하고

절절한 마음 아랑곳없이

너를 내어 줬구나

 

어미만큼 자라 그 어미인 줄 알고

온종일 그림자가 되어 오르락내리락

나름 하고픈 말 쉴 새 없이 하면서

때맞춰 눈에 힘도 주었다 풀었다 

괜스레 바쁜 척 삐졌다 하고

없는 듯 조용한 한나절  

말 없어도 다 듣고 있다

 

말만 하면 딱 좋은데 그 말이

바람 속으로 냅다 뜀박질하다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듯

말없이 느낌만 전한다

 

저는 말하고 나는 듣고

나는 말하고 저는 듣고

누구랑도 할 수 있는 말

아름다운 청빛 꼬리 블루제이와도

서로 주고받는데 소리는 없다

빛처럼 순간 마음에 닿는 말

 

마주 보는 이의 말은 뒤로 흘리고

나의 말을 먼저 하는...

무엇을 하든 지켜보고

모든 감각을 통해 전해주는

놓고 지켜볼 때만 들리는 말

 

어김없이 오는 가을도 말한다   

물든 잎으로 꽃동산 만들고

후둑후둑 점점이 모인 긴 비가

잎을 떨구면 들었노라고

대답해준다 도톰한 스웨터로

 

따뜻한 말만 하자고 온 세상에

그 말에 가을 한낮 따가운 빛이

쌀쌀함 견디려 여러 겹 입은

얇은 옷 하나씩 훌훌 날려 보낸다

소곤소곤 따뜻한 말 듣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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