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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오유순씨 자서전 “길을 걸으면서 행복했습니다”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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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지문 고려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11-02 13:22 조회4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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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한두 달 전에 중고등학교 동기회 카톡방을 통해서 오유순 동기가 건국훈장 모란장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유순씨와는 중고등학교 6년간 한번도 같은 반을 해보지 않았지만 그 소식을 들으니 얼굴이 기억날 듯 했다. 학창시절 어쩌다 복도에서 얼굴을 스친, 희고 해맑고 가냘프면서도 하시라도 다정한 미소가 떠오를 듯한 얼굴이었다. (사실 오유순씨는 학창시절의 이름이 강유순이었고 ‘오유순’은 남편의 성을 딴, 결혼 후의 이름이었는데도 ‘오유순’의 얼굴로 떠오른 것이었다.) 대한민국훈장을 받을만한 큰 일을 했다면 불굴의 의지를 지닌 여장부일 것 같은데 그 얼굴의 주인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친구가 동기 카톡방에 오유순씨 자서전을 읽었다고 올렸길래, 책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더니 오유순씨가 책의 파일을 카톡방에 올려주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제 1장은 오유순씨에 대한 나의 이미지와 상당히 부합하는 생애였다. 결혼해서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단란한 가정을 꾸며서 가족을 위해서 노력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 한편 인근의 동포들의 캐나다사회 정착을 성심껏 도와주는 젊은 여성의 생이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한 첫 본격적인 거사(?)는 캐나다는 각 주마다 다른 주의 약사자격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최초 거주 주에서 새로 약사자격증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오유순씨는 매일 왕복 5시간을 투자해서 시내버스-고속버스-시내버스를 갈아타면서 학교에 다니며 공부해서 자격증을 딴 것이었다. 이로 인해 오유순씨는 기관지가 약해져서 각혈을 했는데 각혈은 30년이나 계속되었다. 이후 오유순씨는 주를 옮길 때마다 새로 약사자격시험을 보아서 결국으로 다섯 개 주의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그 자격증을 자본(?)으로 약국을 경영하고 정부의 약사행정을 대행하면서 고객들의 건강을 극진히 돌봄으로서 돈을 많이 벌었고 주류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인재가 되었다. 자연히 교민사회에 큰 버팀목이 되고 한인들이 캐나다 사회에서 변방이 아닌 주류에 편입되는데 크나 큰 도움을 주었는데 이는 재력으로만 된 것이 아니고 경험적 지혜를 바탕으로 온정과 배려를 베풀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유순씨는 체력적 약함을 커버할 정신력을 갖었고 (또한 자신이 강조한 대로 자신의 건강관리를 정말 철저히 했다. 자신의 몸이 그리스도의 도구라는 생각으로 철저히 관리했던 듯하다. 그래서 건강과 경륜을 바탕으로 점점 더 큰 일, 어려운 일을 해냈고, 나중에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세계 이곳저곳을 몸소 방문하고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샌티아고 캠포스텔로의 도보길까지 5일에 걸어서 완파한다. 


     오유순씨 자서전의 첫 장은 오유순씨가 세 아들을 낳아서 아들들에게 아름다운 유년시절을 마련해 주고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루 세 시간씩 직접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하면서 가정적 행복의 토대를 다지고 올리고 약국을 경영해서 얻는 수익으로 한인 커뮤니티에 금전적, 정신적 도움을 주면서 영향력을 넓혀 나갔나하는 이야기이다. 오유순씨가 그렇게 해서 획득한 행복, 주위에 선사한 행복을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대리만족을 향유한다. 오유순씨는 남에게 행복을 제공하면서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재능의 소유자인 듯 하다. 오유순씨는 이민 초기에도 박찬숙씨 등한국농구단에게 한국음식으로 격려하고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서 승리에 일조했는데 밴쿠버올림픽 때에는 선수단을 제대로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서 다량의 태극기가 필요하겠어서 오유순씨가 직접 한국에 와서 여러 사이즈의 태극기를 주문해서 캐나다로 갖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경기장 관중석에서 태극기가 물결치게 하고 선수들이 태극기를 두르고 경기장을 돌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다. 김연아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 때 두르고 돌았던 태국기가 바로 오유순씨가 그렇게 제작해 간 태극기였다.


    2장에 가면, 오유순씨의 활동 영역이 대폭 확대가 되고 본격적인 업적이 이루어진다. 저자의 어조는 여전히 잔잔하지만 메가톤급 업적이 등장한다. 밴쿠버 교민회장이 되어서 교민들을 위한  양로원을 건축한 것이다. 타국에서의 삶은 외롭지 않을 수 없지만 나이 먹어서 이역만리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바라보는 것처럼 처량한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교민들이 동포들 가운데서 선진국 수준의 돌봄을 받으며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교민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한 일이 있겠는가? 오유순씨는 개인적으로 100만불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쾌척하면서 주정부와 협약을 맺어 5층 규모의 양로원을 건립하면서 2층을 한인전용으로 하기로 합의를 보아서, 머나먼 타국에서 죽음을 바라보게 된 한인노인들에게 안락과 위안을 제공했다. 이는 캐나다교민이 아니라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쁘고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1년에 7명에게 300불씩 수여하던 거의 명색뿐이라고 할만한 교민장학재단을 맡아서는 16년 사이에 759명에게 총 1백만불 이상을 지급한 재단으로 만들었고 적립액 30만불을 비축해 놓고 후임자에게 바톤을 넘긴다. 장학기금 모금을 위해서 가수 조영남씨 초청 콘서트도 조직하고 장학금 수여식에는 수혜자 학생들 뿐 아니라 그 지역 한인커뮤니티의 인사들, 그리고 캐나다 지역사회의 각계 인사들까지 초청을 해서 수혜자들에게 캐나다 주류사회 진입 가능성을 느낄 수 있게하고 지역사회 인사들에게는 한국의 잠재력, 한국의 인재들의 존재를 실감하도록 한다. 


     또한 교민여성들의 단체인 ‘무궁화여성회’를 조직해서 세계 여러나라를 대상으로 선행을 한다. 쿠바 한인이민들의 후손을 위해 위문품을 들고 위문을 가서 4대에 걸친 이민 후손들을 위로하고 북한의 기아아동들을 위해서 북한에 콩과 두유제조기 등을 갖고 가서 북한 아동들의 기아문제를 완화하고, 중국정부가 중국에 입국한 탈북난민들을 강제 북송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노벨평화상 수상자 회의에 가서 폴랜드 전 대통령 레흐 바웬사를 비롯해서 190명의 세계적 저명인사들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오유순씨의 기독교는 모태신앙으로서 외가, 친가가 모두 기독교 가정으로 기독교 정신의 실천은 오유순씨에게 타고난 본성 같은 것이었지만 오유순씨는 자신의 신앙을 심화하고 넓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기독교신학자가 아니고 종교연구가인 남편의 영향도 있어서 차츰 오유순씨의 신앙은 많은 종교를 포용하고 흡수하게 되었다. 세속적 면에서는 더 나은 봉사를 위해 운동 등을 통해 체력을 기르고 사물놀이 등을 배워서 캐나다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데 몸소 참여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거의 쉼 없는 봉사의 삶이면서도 자기발전과 충족을 게을리 하지 않은 충만한 삶이었다.

     그런데 나의 시각에서 오유순씨에 대해서 가장 경탄할만한 사실은 이 책의 본문이 아닌, 오유순씨의 후배의 추천사(?)에서 발견했다. 오유순씨가 한인사회 이사장을 맡기 전에는 한인사회가 험담과 불평의 단체였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병폐가 타국에서의 고달픈 삶 속에서 서로 돕고 감쌀 필요가 정말 절실하고, 다른 나라 이민들은 대부분 단합한 힘으로 이민사회의 난관을 극복해 나갔는데, 우리나라 이민들은 서로를 질시해서 헐뜯고 심지어 당국에 불법이민자를 밀고하는 일 까지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같이 게으르고 소심한 사람은 그런 단체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으려 했을텐데 오유순씨는 그 회장직을 수락했다는 것이 아닌가! 크나 큰 용기와 각오, 사명감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오유순씨의 성공과 행복이 캐나다 한인사회에서 무한 복제되어 각개인은 행복하고 공동체로서는 합리적이고 건강하고 협동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유순씨가 언제나 그 선두에서 이끌면 가능할 것으로 믿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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