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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돌덩이 내려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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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1-03 11:16 조회2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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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숙인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 회원) 


  한 해가 까무룩 내려앉고 있다. 이미 떠날 채비를 하고 돌아앉은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척이나 마음이 헛헛하였다. 무엇을 딱히 한 것 없이 그냥 마음을 놓아버린 한 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022년 3월 이후로 단계적으로 해제되었고, 더 이상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기쁜 소식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 속을 헤매는 듯 갈피를 못 잡고 도무지 무엇 하나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열두 번째, 마지막 달을 맞이하여 비로소 연말에 이르렀다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평생에 단 한 번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은 그동안 한사코 매달리며 사정했건만 독에 쏘여 사경을 헤매던 나는 그런 녀석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한 해였다. 내게로 찾아온 녀석을 제대로 품어보지도 못한 채 작별을 고해야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곁에 충실히 머무르며 안타까움으로 주인을 지켜봤을 그 시간에 참으로 미안하여 용서를 빌었다.    


  2021년 12월, 일 년 전, 그 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시기와 미움을 가진 사람의 말은 독사의 독보다도 더 독하고 치명적이어서 해하고자 하는 상대를 여지없이 물어뜯어 그 자리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것은 세월이 가도 아물지 않고 벌건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아물어져 그것을 볼 때마다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일 년 동안 독사보다 더 독한 그 말을 떠올렸다. 바쁜 일상에서도 생각날 만큼 그것은 가슴 깊숙이에 박혀 독을 내뿜었다. 그러나 이제 그만 내려놓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다시는 귀하디 귀한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만큼이면 충분한 해독이 되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원수를 만들지 않으려면 그 사람과의 마지막은 좋은 감정으로 정리하라고 했다. 그 사람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좋은 마무리가 된다고 했다. 나쁜 감정이 점차 사그라져, 적어도 서로가 원수처럼 헤어지는 일은 없게 된다고 했다. 일 년 전, 일방적으로 내게 했던 그녀의 말은 상처가 되어 가슴에 파편들로 박혀 있었다. 이제 그것을 고스란히 가슴에서 모두 뽑아내기로 했다.   


  일 년 전, 나의 크리스마스 인사를 무시한 채 그녀는 짧게 자신의 질문만을 카톡에 남겼다. 평소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는 아니었을지라도 문장의 앞뒤로 그 어떤 호칭은 있어야 했다. 최소한 ‘안녕하세요’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리고 적어도 이유를 설명했어야 옳았다.  아무튼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 다음 쏟아지던 그녀의 모든 말들은 무례하였고 일방적이었다. 그 당시 느꼈던 실망과 황당함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다. 무조건 그녀가 있는 곳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간절함만이 나를 쥐고 흔들었다. 한시라도 바삐 그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세상은 온통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며 밝은 빛으로 눈부시기만 한데, 독화살을 맞은 나는 그 자리에 거꾸러져 숨도 쉴 수 없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둠 속의 깊은 바다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폭풍우였고 심한 비바람에 패대기쳐진 나는 갑판 한구석에서 겨우 꼴딱거리고 있었다.        


  머무르지 않아야 할 세계에는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다치지 않고 몸을 다치지 않는다. 억울해 하거나 원망한다는 것은 누워서 침을 뱉는 격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차라리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이 백 번 낫다. 원망의 마음이 들 때마다 더욱 노력하지 못했던 나의 잘못을 탓을 함이 옳다. 이 풍진 세상을 떠날 때는 이 세상에 올 때처럼 가지고 갈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마음에 짐이 하나라도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성냄도 분함도 고스란히 내려놓고 티끌만한 미련도 남기지 않고 홀가분하게 떠나야 한다. ‘남의 결점이 눈에 띌 때 내게는 그런 허물이 없는지 되묻고, 남의 결점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 용서하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통로가 열릴 것’이라고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남의 말이나 행동에 간섭하지 말라. 다만 내 자신의 허물과 내 자신의 행동과 말씨를 살펴 고쳐나가라’ 라고 법구경에서도 피력하였다. 누군가에게 맺힌 것이 있다면 다 풀어버리고 홀가분해지라, 그러면 앞으로 다가오는 삶의 어려운 시간도 능히 산들바람처럼 맺힘 없이 살아낼 것이다. 

이제 마음을 비우고 그 안에 얹혀 있던 무거운 돌덩이를 나, 비로소 내려놓는다. 


*이천이십 이년에 글을 쓰고 나서 일 년이 흐른 뒤, 이제서야 그 돌덩이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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