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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대화의 폭력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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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종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1-10 09:18 조회1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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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어느 추운 눈 내리는 날 고슴도치가 한 마리가 벌판을 헤매고 있다.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혼자 헤매다 보니 굶주리고 두려웠다. 혼자서는 또 위험하기에 외로웠다. 그러다 우연히 추위를 피하여 기어들어 간 한 어두운 땅굴 안에서 깜짝 놀란다. 자기와 같은 고슴도치들이 서로 모여 웅크리며 추위를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다가간 한 고슴도치에게 다시 깜짝 놀란다. 공격적으로 나를 가시로 위협하는 게 아닌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놀란 마음에 동굴 밖으로 나왔다가 마음을 다시 고쳐먹는다. 아직도 눈 내리는 동굴 밖은 너무나도 추운 것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슬금슬금 무리 근처로 다가가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가시로 한 고슴도치를 찌르게 된다. 물론 상대 고슴도치도 깜짝 놀라 가시를 세우며 공격적으로 변한다.


인간은 중첩적인 존재라 여러 방면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 성질을 크게 나눠본다면 존재성과 관계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존재와 관계는 욕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부딪친다. 상황에 따라 욕망은 변하는데 두 가지 성질을 함께 충족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삶의 생로병사에 따라 욕망의 세기와 성질은 다 다르다. 마치 계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나무는 존재의 모습을 바꿔야 사는 것과 같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존재성과 관계성의 갈등을 고슴도치 우화를 통해 풍자하고 있다. 혼자서 온전하게 존재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같이 있으면 서로 상처 주기 쉬운 인간들의 모순적인 삶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문명이라는 동굴 안에서 함께 살아오면서 폭력은 꾸준하게 감소하여 왔다. 이제 문명화된 현대의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것은 언어의 폭력이다. 언어폭력에 오래 노출되면 그 고통에 차츰 둔감해진다. 그 폭력에 대응하면서 차츰 나의 말투도 변화된다. 말 습관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그러면 현대의 대화에서 폭력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먼저 시간의 분배가 다르다. 대화에서 누가 주로 말하는가를 보면 그 서열구조를 가늠할 수 있다. 상대의 듣고 싶은 의사와 무관하게 질문을 듣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무한반복 하는 것은 말의 폭격에 가깝다.

그런 폭력의 고통은 두 가지 상황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먼저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써야 하는 상황이 고통이다.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나보다 언어 구사 능력이 뒤처진 사람을 상관으로 모셔야 할 때이다. 즉 나보다 언어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지시를 받고 나의 선택과 진로의 방향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상황이다.


다음으로 대화를 승부로 보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될 때 언어폭력은 칼춤을 출 준비를 한다. 삶에 정답이 없듯이 대화는 언어를 통한 유희. 언어 놀이의 즐거움으로 문화는 더욱 풍부해진다.  하지만 이들은 대화를 반드시 결론을 도출하고 그 내려진 결론에 굴복시켜야 하는 과업으로 본다. 이런 시각은 긴장되고 여유가 없으니 조금만 다른 의견과 해석이 나오면 레코드에서 판 튀듯이 감정의 불협화음이 튄다. 다른 의견을 잡음으로 간주한다. 웃음은 점차 줄어들고 유머는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의 말을 막는 데 사용된다. 유머를 하는 사람은 웃는데 분위기는 한순간에 냉기가 돈다. 유머 안에 뼈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보다 본인의 성공 경험이 많을수록 결과에 다가가는 효율성에 집착하게 된다. 문제가 생기면 결과에 몰두하고 과정에는 소홀하게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이는 대화를 과정이 아닌 결과의 승부를 위한 말의 격투기매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다른 의견에 대한 납득이나 동의는 곧 패배를 의미한다. 결국 문제는 해결된다 해도 대화 참여자들은 감정의 상처를 입게 되고 언젠가 비슷한 문제는 시간차로 되풀이된다.


물론 언어 구사 능력이 부족해도 상대를 굴복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일반적인 방법은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 자체를 공략하는 것이다. 대화의 내용보다 화자의 욕망 아랫도리를 공략한다. 의식의 링에서 자신이 없으면 상대를 무의식 세계로 끌고 온다. 질문을 무안하게 만들고 웃으며 말을 자주 끊고 화제를 이리저리 돌린다. 즉 감정을 흥분시키는 것이다. 일단 감정이 흥분되기 시작하면 그의 말은 이성을 잃고 스스로 방황하다 무너지기 쉽다.

이러한 말의 주고받음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지 못한다. 관계는 소원해지고 그 사람과의 만남은 거북함으로 기억된다. 말이 사납고 견고하다는 평판이 굳어지면 연락이 뜸해지고 점차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외로운데 스스로 고독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는 승부를 보는 격투기장이 아니라 서로의 즐거움을 위한 무도장에 가깝다. 리듬과 흐르는 음률에 나의 몸을 맡기고 불확실함에 내 엉성한 실수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부족해 보이는 말을 들어주고 상대의 실수에 눈감는 여유는 나의 감정적인 용기에서 나온다. 서로의 실수를 눈감아 주며 쌓이는 신뢰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의 실수나 어려움은 받아넘겨 소화하는 넉넉한 소화력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대화를 통한 수평적인 상호관계를 쌓아가는 동행 길이다. 이러한 방향이 추운 외로움에서 따듯한 관계의 동굴로 함께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거리의 조절을 익히는 방향일 것이다. 가시를 지니고도 함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언어훈련. 대화 연습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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