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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시간] 글쓰기로 밥 먹고 사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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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1-15 19:57 조회2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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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데리고 간 사진전 마지막에는 분쇄기가 여러 대 놓여 있었다. 자신의 고민을 적은 종이를 분쇄기에 갈아 넣는 의식을 하라는 것이다.  정성껏 무언가를 쓴 그녀는 분쇄기에 종이를 천천히 집어넣었다. 힐끔 보니 ‘드라마’라는 단어가 여러 번 적혀 있다. 나도 몇 자 적어서 망설임 없이 분쇄기에 집어넣었다.     


십여 년 전 처음 만났을 때 J는 드라마 작가가 꿈인 이십 대 초반 보석가게 아가씨였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공모전에 응모했다. 이번 한국 방문 기간에 만난 J는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었다. 교육원에서 드라마 작가 교육을 받고 있고, 다음 과정에서는 방송국 PD에게 대본을 선보일 기회를 도 있단다. 많이 왔다.


어느새 눈에 보이는 성과가 중요한 삼십 대에 접어들었는데, 십 년이 넘게 한결같이 꿈을 간직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그 꿈의 의미는 무얼까. 나는 턱을 괴고 한참 동안 그녀의 꿈이야기를 들었다. 꿈을 향해 가면 갈수록 막막하고 불안해 죽을 것 같다가도 ‘드라마로 밥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꿈틀 된다고 했다. 글쓰기로 밥 먹고 사는 꿈이라니!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꿈꿀 수 없었는데, 쓰는 일로 돈 버는 꿈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다.

 

나는 글쓰기가 어려울 때마다 그녀를 떠올리곤 한다. 이미 성공한 작가들보다 나처럼 글쓰기에 고군분투하는 J에게 동료 의식과 도전을 받는다. 그녀는 일하면서 글을 쓰고, 일을 멈추고도 글을 썼다. 어른이 되며 늘어나는 삶의 무게로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넘쳐났을 것이다. 밥벌이마저 접고 쓰는 일에 온 하루를 다 받치는 꿈의 무게는 묵직하다. 그녀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 목표를 이제는 그만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한다. 글이란 게 자신이 좋아서 쓰는 것이지만, 결국은 공감을 얻어야 계속 쓸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내 감성, 내 만족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쓰는 사람이 제일 잘 안다. 글쓰기를 사랑하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글은 쓰리다. 초짜 글쟁이들에게도 쓸 수 없는 것은 형벌이니까.  


자본주의 냄새가 잔뜩 나는 사진전을 둘러본 후 기가 한풀 죽었다. 전시장의 규모와 작품 수, 화려한 기획이 결국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고, 그래서 이 작가는 한층 더 유명해질 것이다. 예술을 생산하는 일이야말로 부와 비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글 쓰는 일은 지불하는 비용이 턱없이 작지만 그마저도 허덕이는 우리의 모습이 초라했다. 하지만 기죽은 채로 전시장을 나오고 싶지 않아 번지르한 사진전을 히죽거리며 못난 질투를 했다.  


그럼에도  J는 살아있으니 뜨겁게 글쓰기를 지속할 것이다. 공모전 심사위원들에게 선택받지 못했지만 쓰는 일은 무용하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향한 그녀의 부지런함이 탁월한 재능이 되어 TV 드라마의 크레딧에 당당하게 그녀의 이름이 올라갈 것이다.  ‘드라마 작가 김지희’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질 날을 기다리며 주저하지 않고 오늘도 정진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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