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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밴쿠버문학] 4•19 그날, 우리는 알아요!-이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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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3-31 16:38 조회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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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ㆍ(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4•19 그날, 우리는 알아요!


덕수궁 돌담에는 제4대 부통령 후보들의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기붕 부통령 후보의 사진만이 유독 갈기갈기 찢겨있었다. 자유당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분노가 그 사진을 찢음으로써 그분을 삭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수는 집 근처에서 4•19혁명 시위를 며칠째 하던 중 잠깐 집에 들렀다. 집 마당에 들어서자, 마자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고, 선생님, 그 꼴이 뭐예요? 저놈들이 사람 다 죽이겠네!”

하숙집 아주머니는 성수를 보더니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참, 호성이, 찬희, 재열이와 진아가 부정선거 시위대 구경 간다고 나갔는데 못 만났어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성수는 그 말에 벌떡 일어나 대문을 뛰쳐나왔다.

덕수궁 건너편에 시위대와 진압대가 뒤엉켜 벌집을 들쑤신 것 같았다. 메케한 냄새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저만치서 몇몇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휴! 다행이다.”

아이들을 향해 달려갔다.

“얘들아! 위험한데 얼른 집에 가! 빨리 뛰어!”

“형!”

그 아이들은 성수를 보자 품으로 달려들었다. 아이들과 처음 만나던 날이 생각났다. 작년 가을 일요일 이른 오후, 모처럼 늦잠을 자고 도서관에 가느라 대문을 나섰다. “야들아! 학교 운동장에 가서 놀아라. 여긴 대학생 형이 공부하고 있어 떠들면 안돼야.”

아주머니가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고 있었다.

“아, 괜찮아요. 저 지금 나가요.”

성수가 자란 고성 무량리 칠숙의숙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떠들면,

‘허허! 너희들이 있어 이 무량리는 해가 지지 않는 거란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법이다.’

어머니가 한 말도 생각나 흐뭇했다. 성수는 책가방을 담벼락에 올려두고 아이들과 어울렸다.

“얘들아, 나도 칼싸움 잘하는데 끼워 줄래?”

아이들은 나무 막대기로 칼싸움을 하고 있었다.

“정말요? 하지만 어른은 안 되는데요.”

한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나 어른 아니고 형이야! 형!”

저희끼리 소근 대더니 그 아이가 말했다.

“좋아요. 대신 반칙은 안 돼요.”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을 소개했다.

“전 강찬희고요. 사랑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전 박재열, 4학년이에요.”

“저는 이호성, 재열이와 같은 학년이고 우린 삼총사예요.”

“우린 사총사. 제겐 예쁜 여동생이 있어요. 4학년이고 이름은 강진아예요. 나중에 올 거예요.”

“아, 미안. 사총사!”

호성이가 바로 사과했다. 찬희가 여기 없는 동생까지 소개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또렷이 표현할 줄 아는 똑똑한 아이들이었다.

“와! 반갑다. 나는 대학교 1학년이란다. 이름은 이성수! 성수 형이라고 불러줄래?”

“아, 앞집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다닌다는 그 대학생 형이네요.”

호성이가 말했다.

잠시 뒤 여자아이가 달려왔다.

“넌? 강진아?”

“네, 제 동생 진아예요. 진아야, 인사해라. 성수 형이야!”

“성수 오빠 안녕? 사총사 구성원 4학년 강진아예요.”

“반갑다. 예쁘고, 똑똑하게 생겼네.”

“진아는 글을 참 잘 써요. 가을맞이 교내 백일장에서 대상 받았어요.”

호성이가 진아를 소개했다.

“호성이가 진아한테 진 거에요. 호성이도 글을 잘 쓰는데 2등 했어요.”

“호성이가 동생한테 양보 한 거네?”

“히히, 맞아요. 얘는 참 착해요.”

그리고 성수는 아이들과 합류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었다.

그 뒤부터 가끔 아이들과 골목에서 한바탕 놀고 나면 성수는 고향에 가있는 느낌이었다.

그 아이들이 지금 덕수궁 시위 현장에 가 있었다. 진아는 오빠 손을 꼭 잡고 놀라서 덜덜 떨고 있었다.

“너희들 여기 왜 왔니? 위험한데.”

“우리 학교 선생님이 지난번에 투표소에서 몰매 맞은 거 아세요? 막걸리 안 먹었다고 반공청년단이 몽둥이로 때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도 부정선거 데모할 거예요.”

“그분이 너희 학교 선생님이었니? 형이 투표하러 갔다가 직접 목격했어. 그래도 어린이들은 안 돼! 위험하니까 빨리 집에 가라.”

그때 많은 시위대 대학생이 덕수궁 쪽으로 몰려왔다. 최루탄 냄새에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콜록콜록!”

아이들이 심하게 기침했다.

“으, 오빠! 눈을 못 뜨겠어요.”

“손으로 눈을 비비지 마라.”

성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반대편으로 뛰었다. 재열이와 호성이는 진아 손을 잡고 앞장서 뛰었다. 성수와 찬희는 그 뒤를 따라 정신없이 뛰었다.

“빨리 뛰어라. 어서!”

“부정 선거 타도하자!”

앞에서 대학생들이 구호를 외치자 모두 따라 외쳤다. 그때 총소리가 났다.

“탕탕탕!”

진아 앞에서 사람이 쓰러졌다. 진아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무서워. 오빠!”

“재열이와 호성이는 진아 손 꼭 붙들어라. 뒤돌아보지 말고 돌담을 끼고 앞만 보고 뛰어라. 형이 뒤따라갈 테니까.”

그리고 성수는 찬희 손을 끌어 앞에 세웠다.

“헉헉! 형!”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동생들 뒤에 바짝 붙어라. 형이 뒤따라가니 걱정 말고 뛰

어.”

“와와! 부정선거 타도하자!”

시위대들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부상자와 시체들이 길에 널브러졌다.

“탕탕!”

“악!”

찬이가 앞으로 푹 쓰러졌다.

“찬, 찬희야!”

성수는 놀라 찬희를 일으켜 안았다. 찬희 가슴에서 피가 솟았다.

“찬희야. 찬희야! 아아악!”

성수는 맹수의 포효하는 소리를 냈다. 재열이, 호성이 진아가 뒤돌아섰다.

“아악! 오, 오빠, 오빠!”

“혀형!”

“찬희야, 안 돼! 죽으면 안 돼! 형이야 형!”

성수는 찬희를 안고 뛰었다. 아이들도 뒤따라 울부짖으며 뛰었다.

“찬희야. 동무야! 엉엉!”

“비켜요, 비켜! 아이가 다쳤어요. 아이가 총에 맞았다고요.”

성수는 찬희를 안고 시위대를 헤치고 나가며 소리쳤다.

“그만 쏴! 이 살인마들아!”

성수는 찬희를 바닥에 눕히고 다급하게 입을 벌려 인공호흡을 했다. 가슴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찬희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제발, 제발 찬희야! 으, 흐흐흑!”

재열이 호성이도 찬희 손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오빠! 제발 오빠!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눈떠 봐! 얼른 눈뜨란 말이야! 엉엉!”

진아는 오빠를 붙들고 울부짖었다.

군중들은 물밀듯이 밀려왔다. 경찰들은 군중들을 향해 대사포를 쐈다.

“너, 너희들은 얼른 집에 가라. 얼른! 형은 찬희 안고 병원에 가겠다.”

“우리도 따라갈 거예요.”

“안 돼, 너희들이 따라오면 빨리 병원에 갈 수가 없어. 어서 집에 가서 기다려. 빨리 병원 가지 않으면 찬희가 위험해.”

성수는 찬희를 안고 뛰었다. 마침 구급차가 오고 있었다.

“애애앵!”

성수 앞에서 구급차가 멈췄다.

“아, 아이가 다쳤어요. 어서 빨리요!”

구급대원이 찬희에게 인공호흡기를 씌웠다. 출혈이 너무 심해 찬희는 의식을 잃었다.


 찬희가 잠깐 눈을 떴다.

“지, 진...아...”

“찬희야. 형이다. 정신 차려!”

인공호흡을 하던 구급대원이 손을 멈추었다.

“으흐흑!”

성수는 찬희를 붙들고 오열했다.

“형이 잘못했어. 너를 앞에 보내는 게 아니었어. 미안해. 형이 지켜주지 못해서.”

잠시 총소리도 숨죽였다.

며칠 뒤 사랑국민학교 어린이들 100여 명이 피켓을 들고 시위대 앞에 나섰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살려내라! 우리 동무와 오빠들을 살려내라!”

그때 총성이 들리고 최루탄이 시위대와 어린이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콜록콜록!”

사방에서 아이들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오빠! 이 확성기 저 좀 주세요.”

성수가 가지고 있던 확성기를 들고 진아는 동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오빠를 잃은 진아(강명희)의 목소리는 슬픔에 젖어 떨렸다. 군중들이 오열했다.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 오면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중략)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중략)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오빠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렀는지를


언니 오빠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강명희의 동시-일부


“흐흑!”

그때 트럭들이 시위대와 어린이들 앞을 지나가며 총을 난사했다.

“탕탕!

“재, 재열아!”

재열이가 그 총탄에 쓰러졌다.

“얼른 피해!”

 성수는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고 재열이를 안고 구급차 쪽으로 뛰었다.

“재열이 오빠! 동무(친구)야! 재열아!”

성수 뒤에서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총성에 묻혔다. 결국 재열이도 숨지고 말았다.

“으 흐흑!”

성수는 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안겨주기 위해 앞장서서 외쳤다.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민주주의를 쟁취하자!”

“쟁취하자!”


▶이 작품은 4•19혁명 장편 청소년소설 중 한 찹터다. 4•19시위로 어린이 다섯 명을 포함한 186명의 희생자를 내고 부상자는 수천 명이었다. 성수(가명)는 필자의 외삼촌이며, 당시 4•19를 주도한 증인이고,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의장이었다. 그때 당한 부상으로 휠체어를 타고 있다. 필자는 취재를 위해 4•19민주묘지와 주인공이 자란 고성무량 칠성의숙터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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