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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시간] 곁의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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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5-01 00:13 조회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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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찾는 분과 맞는지 모르겠는데, 아빠 생각이 나요.”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고 싶다고 나는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친구 ‘하나’가 자신의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십여 년을 벗하며 지냈지만 졸업 후 나는 한국에서, 하나는 캐나다에서 지낸터라 서로 집안 사정을 잘 알지는 못했다. 하나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홈리스를 섬기는 목사님인 것은 알고 있었다. “아빠는 어떤 분이야?” 


그녀는 아빠의 서사를 담담하게 나누었다. 자녀는 부모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아 날카로운 눈으로 평가하기 쉬운데 주저 없이 아빠를 친구에게 소개하는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 자비량인 아빠의 사역으로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하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개인적인 내용이라 묻지 않았던 것들을 조심스레 물었다. “저도 자비량으로 컸어요.” 찡긋 웃는 하나의 얼굴엔 거리낌이 없었다. 그럼에도 인색하지 않고 다정했던 하나의 표현이 하나 둘 기억난다. 


나는 아빠를 생각할 때 내게 쏟은 정성과 희생을 떠올린다. 가족에게 윤택한 삶을 주려 흘린 그의 땀과 노력, 내 현재와 미래를 지지하기 위해 감내했던 아빠의 시간이 기억난다. 하지만 하나는 아빠를 생각할 때 무엇을 떠올릴까. 홈리스 사역을 하는 아빠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까. 거리의 친구들 곁을 지키느라 가족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는 아빠를 보는 하나의 마음이 궁금했다. 아빠의 사명과 꿈이 가족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못해도 가족은 아빠의 꿈을 지지할 수 있을까. 


“아빠는 사과를 잘해요.” 하나의 천진난만한 답변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결국 이 말 때문에 친구 아빠의 삶을 쓰기로 했다. 딸에게 전해진 아빠의 미안한 마음, 아빠의 진실한 표현이면 충분하다는 딸, 두 사람을 깊이 알고 싶었다. 목사님을 뵙기 전에 여러 번에 걸쳐 하나에게 아버지와 사역에 관해 물었다. 한평생 지키고픈 소명을 가족에게 인정받는 일은 어쩌면 사역자에게 가장 어려운 일 것이다. 아빠와 다른 길을 갈만 한데도 하나는 지역 교회에서 어린이 전도사로 십여 년이 넘게 사역하고 있다. 아빠를 보고 자란 하나가 아빠처럼 산다. 


타인에게 베푸는 선한 일이 가족에게도 지지받는 일이란 게 감사했다. 가족에게 진심을 전한 하나의 아버지, 좋은 사역자이기 전에 좋은 아버지인 최목사님을 만나 뵙고 싶었다. 온라인상에서 목사님에 대한 기사와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고도 수개월이 지나 최목사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목사님은 내가 하나의 친구라는 걸 모르고 계셨다. 내 소개를 한 후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누구보다 딸에게 인정받았으니 훌륭한 삶을 살고 계셔요. 그런 친구 아빠를 만나러 왔어요.” 


하나를 보며 드는 생각은 타고난 환경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살아가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물질적 지원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진심이 더 크다는 것을 하나를 통해 배운다. 쉽지 않은 삶과 여건 속에서 바람에 자신을 맡기 듯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들꽃 같은 이 친구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힘든 시간에는 한 발자국 떨어져 내 삶에 인사했어요. 그러면 고통에서 조금 떨어져 나올 수 있어요. 그리고 기도해요. 지금의 고난으로 내 성품이 독해지지 않기를요.”


하나의 고백을 들으며 생각했다. 하나가 아빠의 곁이 되었구나. 하나가 있어 부모님이 긴 시간 거리의 친구들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빠에게도 곁이 필요했을 테니까. 어려운 시간에도 하늘을 신뢰하며 사랑을 전하는 이 가족의 성품과 믿음이 서로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낮은 자리의 ‘곁의 곁’으로 살아온 친구 어깨를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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