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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양천 유칠왕 칼럼] 잊지 말아야 할 한국전쟁과 월남전의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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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칠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5-08 18:03 조회2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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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유칠왕ㆍ칼럼니스트 


캐나다 참전용사와 월남 파병 장병들의 희생에 감사를


6.25 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영웅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 캐나다 참전용사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데 기여한 고 Greg Thompson 전 보훈처 장관과 연아 마틴 상원의원의 공로를 인정하고,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 중 한 분이신 G. Thompson 의원께서는 2019년 작고하셨다. 


캐나다군은 1957년까지 2만6,800여 명이 한국전에 참전했으며, 312명이 전사하고 1,557명이 부상을 입는 등 큰 희생을 감수하며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우리는 이들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필자는 1985년부터 온타리오에서 캐나다 참전용사들을 위한 행사를 개최하고, 밴쿠버에서도 참전용사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왔다. 


또한 고 Fred Randall 의원과 함께 일하며 그의 지역구와 국가를 위하는 훌륭한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버나비 에드몬즈 지역에서 한인 의원이 탄생하기를 기대하며, 우리는 캐나다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양국 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캐나다군,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빛나다


1950년 8월, 6.25 전쟁 발발 6주 만에 캐나다 정부는 제25여단 파병을 발표했다. 로킹햄 준장의 지휘 아래 전차중대, 야포연대, 공병중대, 수송중대 등이 배속된 이 부대는 1951년 2월 영연방 27여단과 함께 여주 북쪽에서 적군과 맞섰다. 


4월 23일 밤, 중공군의 일제 공격으로 캐나다군은 완전히 포위되었지만, 진지를 사수하며 우군의 지원 없이 25일 오후까지 단독으로 싸웠고 결국 포위망을 뚫고 살아남았다. 이 전투의 공로로 캐나다군은 미국 대통령의 표창을 받았고, 1967년 9월 가평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필자는 1950년 11월 육군소위로 임관되어 103사단에 발령받았다. 당시 103사단은 경남 지구 치안 확보와 각 전투사단에 병력을 보충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951년 2월, 필자는 육군 중위로 특진되어 107연대 본부중대장으로 발령받아 연대의 각종 업무를 철저히 점검했다. 당시 그 지역에는 공비(빨치산)가 많아 민간인 피해가 컸다. 공비 출현 신고가 들어오면 각 대대의 중대와 소대가 연대장 승인 하에 출동하여 진압에 나섰다. 1951년 12월 103사단이 해체되어 필자는 의병 제대하고, 이듬해 초 K.L.O.부대에 입대하여 1953년 7월 휴전까지 복무했다. 


캐나다군은 한국전쟁에 연인원 2만 6천여 명이 참전해 312명이 전사하고 1,557명이 부상을 입는 큰 희생을 치렀다. 그들의 용맹한 활약상은 한국전의 역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 바친 캐나다 용사들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월남전 참전용사,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숨은 영웅


1960년대 아프리카 최빈국보다 낮았던 우리나라의 국민소득, 6.25 전쟁의 후유증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해외로 진출할 것을 독려했고, 이에 응답한 이들 중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월남전에 32만 여 명을 파병했고, 그 중 5천여 명이 전사하고 1만 1천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5만 9천여 명이 고엽제 피해를 입었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참전용사들이 월남에서 벌어들인 달러는 한국 근대화의 종잣돈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1966년 5월 유왕회사 직원 90여 명과 함께 월남에 진출해 1970년 말까지 주월 미군과 계약을 맺고 외화를 벌어들였다. 당시 주월 태권도교관단 단장을 맡은 남태희, 김석규, 김봉식 중령은 필자와 함께 청도관에서 수련한 인연이 있었다. 방첩대장 이상열 대령의 도움으로 1968년 사이공 구정 사태 때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콩군이 사이공 점령을 위해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을 투척하며 진격해 오자, 월남인 직원들은 자기 목숨부터 챙기느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상열 대령 덕분에 우리 회사 직원들과 필자 내외는 위기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1970년 필자는 번 돈으로 트롤어선 3척을 매입해 유왕호로 명명하고 전욱현 예비역 해군대령을 부사장 겸 기지장으로 임명했다. 어업기지는 중남미 지역이었다. 이처럼 월남전 참전용사들은 목숨을 걸고 조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영웅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보답하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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