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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8-03 12:07 조회4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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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철학
올더스 헉슬리 지음
조옥경 옮김, 김영사
528쪽, 1만9800원 


『영원의 철학』은 제목부터 흥미롭다. 영원한 철학(perennial philosophy)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 게다가 저자가 SF소설 『멋진 신세계』를 집필한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의문을 해결하는 열쇠는 헉슬리가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데에 있다. 그는 중년 이후 인간 의식의 종교적 차원, 보다 정확히는 신비주의적 차원의 규명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오랜 탐구를 통해 헉슬리는 인간이 궁극적 실재, 이른바 ‘신성한 실재’를 체험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종교 전통은 개인들이 경험한 신성한 실재를 시공의 맥락에서 각기 달리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헉슬리는 깨달음, 각(覺), 신비적 합일, 목샤(moksa·해탈) 같은 개념이 우리가 종교적 수행을 통해 의식의 심층에서 도(道), 브라흐만, 신(神), 천(天), 공(空) 등과 같은 신성한 실재를 만나는 사건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범한 체험을 일컫는 단어가 종교 별로 다른 것은 당연하다. 본질은 같지만 이름 짓는 방식은 개인과 사회에 따라 상이 하기 때문이 다. 코가 긴 거대한 동물을 ‘코끼리’, ‘elephant’, ‘상(象)’ 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는 철학과 종교에 심취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노년에 들어 종교와 신비의 문제에 몰입하면서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영성가들과 깊이 교류했다. [Getty Images/멀티비츠]
 종교는 세계와 인간 존재의 심층에 자리한 신성한 실재에서 비롯됐으며, 종교의 차이란 동일한 대상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이라는 것. 이를 간명하게 지칭하는 단어가 바로 여러 종교 전통에서 발견되는 신비주의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러니 헉슬리가 에크하르트(Eckhart)·상카라(Sankara) 같은 신비주의자들과 우파니샤드를 위시한 신비주의적 경전을 징검다리로 삼아 논의를 펼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요컨대 ‘영원의 철학’이란 우리가 존재의 심층에서 맞닥뜨리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진리라는 것이다.

 헉슬리는 이런 식으로 종교의 기원 문제를 포함해 종교의 기능, 나아가 종교가 왜 서로 다른가라는 일련의 난해한 질문들에 답하려 시도한다. 그의 보편주의적 주장은 분명히 매력적이다. 종교의 정당성을 포함해 종교의 차이와 이로 인한 갈등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심할 필요성 역시 크다. 그의 주장처럼 신성한 실재가 실제로 존재하며, 종교를 넘어서 동일한지 입증 가능한가는 난문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동일성의 확신 역시 다른 차원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원의 철학’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 다양한 종교인들이나 비종교인들을 겨냥하는 영적 우월감의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40년대에 출간된, 칠순(七旬)에 가까운 이 책을 오늘 우리가 다시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내 생각에는 그렇다. 종교가 무엇이고, 왜 서로 다른가라는 질문을 한번이라도 마음에 품어 본 사람이라면, 설령 헉슬리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이 책으로 본격화된 종교의 동일성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 점에서 헉슬리는 우리의 ‘영원한’ 궁금증을 건드리는 데 성공한 게 틀림없다.

 종교는 여전히 우리에게 수수께끼다. 왜 모든 문화는 종교라는 제도를 빠짐없이 만들어 내는 것일까.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가 주장했듯이 종교는 불확실하고 유한한 삶을 꾸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위로하는 환상이나 위안물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헉슬리의 견해처럼 신성한 차원에서 유래한 무엇일까.

 게다가 종교는 왜 이토록 다를까. 종교가 상품처럼 선택의 대상이 된 시대,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유혈 사태가 보여주듯 종교적 갈등이 어느 때보다 격화된 시대에 이런 물음들을 그저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시도로만 보기 어렵다. 

 더욱이 유례를 찾기 힘든 다종교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헉슬리의 물음은 지적 호기심의 차원에 멈추지 않는다. 예컨대 우리나라 미혼 남녀가 첫 손으로 꼽는 결혼 대상자 기피 요건은 놀랍게도 (혹은 현명하게도) ‘종교’다. 또 종교를 둘러싼 숱한 스캔들은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옮기기 쉽지 않은 책을 꼼꼼하게 다듬어낸 역자의 노고 역시 독서의 재미를 더해 주리라는 점도 덧붙인다. 

성해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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