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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한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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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5-01 09:43 조회7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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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집을 정했다. 첫 번째 집은 일년 정도 살 집으로 서둘러 찾았었다. 어디라도 교통이 편리한 2호선으로 알아본 것이 신림역 부근이었다. 언젠가 살던 집 욕실보다도 작은 원룸에 소박한 책상과 옷장, 작은 냉장고만이 덩그러니 있던 집.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휘황찬란한 유흥가의 불빛과 민망한 전단지에 울음을 터트린 적도 있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비집고 들어오는 길 위의 소음에 잠을 못 이룰 때도 있었다. 그래도 슬프지 만은 않았다. 어른이 되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했으니까.

자신이 스스로를 온전히 먹여 살릴 때의 감격을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알다니 한심하다해도, 내 늦은 독립이 자랑스러웠다. 낯선 한국 땅으로 건너와 처음에는 당혹했지만, 이 집에서 밥벌이를 시작으로 한국 사회 속의 자아를 내 힘으로 확립해 나갔다. 모국어로 글 공부와 ‘우아한 비행’도 시작했으며, 이제는 예쁜 옷이 아닌 한국말 책을 쓸어 담아 모았다. 삶에서 가장 간소하게 살았던, 그런 삶도 가능하다는 걸 몸으로 깨닫던 나날,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두 번째 집은 학교에서 가깝고, 깨끗하되 첫 번째 집보다는 넓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빠가 선뜻 보내준 커진 보증금을 가지고 집세, 거리를 계산해 찾다가 깨끗하고 평수가 넓은 반 지하에 집을 구했다. 캐나다 집도 ‘베이스먼트’에 방과 거실이 있었고, 그 위로 1, 2 층이 있어서 그랬는지 ‘반지하’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데 지인들의 걱정이 자자했다. 마치 반 지하집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처럼. 한국에서 반 지하집은 습하고 빛이 잘 안 들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집을 대표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도 여러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삶을 일구어간다. 때마다 사람들은 이사를 나가고 빈틈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이웃이 된다. 우리는 일상의 소리를 나눈 누구보다도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걱정을 한 움큼씩 쏟아 내었던 ‘비싼 반 지하’ 집에서 나는 별 불편함 없이 잘 머물렀다. 사람 사는 곳은 크기는 다를 수 있어도, 사는 모양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집에서 사는 두해 동안 한국의 곳곳을 누볐고, 집에 돌아와 즐겁게 기록했다. 영어 선생일도 인정받아 월급도 올랐다. 차근차근 인생을 쌓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던 나날, 사는 게 재미졌다. 

내가 이사 가는 게 심술난 주인아저씨가 보증금을 주네 마네, 이사 날짜가 괜찮네  아니네로 속을 태웠지만 결국 조율이 되었다. 세입자의 쓸쓸한 사정도 속속히 느꼈고, 돈의 힘과 서러움도 경험했다. 앞으로도 세입자로 고충이 있겠지만, 다가올 세 번째 집은 기대가 된다. 방도 두개 있고, 2층에 남향이라 빛도 잘 든다. 몇 개의 가구도 더 장만해야 하니 살림도 늘어 날 것이다. 이 넓은 서울에 작은 공간이지만 지낼 집이 있기에 나는 계속해서 어딘가로 떠나고 다시 돌아 올 것이다. 삶은 끊임없이 권태와 공포를 추처럼 왔다 갔다 할테지만 이집에서도 멋진 문장을 발굴 할 것이고, 길 위에서 받아 적은 감동을 성실히 기록할 것이다. 이번에는 벗들을 불러 집들이라는 것을 계획해 봐야겠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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