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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낡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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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7-17 08:32 조회5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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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실 옆에 ‘시설관리실'이 있다. 책상 다리가 삐걱거리거나 연필깎이가 헛 굴러가도 조르르 달려가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면 뚝딱 뚝딱 고쳐주시는 관리실 선생님이 계신다. 김선생님은 이년 전 여름에 이 학교로 오셨고, 우리는 두 해 동안 나란히 공간을 나누어 썼다. “저에게 마음 깊은 소원이 하나 있어요.” 책상 다리를 조립하다 말고 선생님은 자신의 꿈 이야기를 꺼냈다. “영어 책을 읽고 싶어요. 영어 공부하러 캐나다에 가고 싶구요.” 내가 캐나다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종종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여느 사람들이 갖는 막연한 꿈이라 생각했다.  

퇴직을 며칠 앞둔 선생님은 내 교실을 찾아오셨다. “오늘은 그냥 놀러 온 거에요.” 수줍게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은 맨 뒤 책상에 얌전히 앉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 깊은 소원을 이년 전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물론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곧 퇴직을 하면 영어공부를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며, 캐나다에 가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려면 어떤지를 물었다. 나는 다시 들은 그의 늙은 꿈이 조금은 허황되다 생각했다. 단순히 영어책을 읽고 싶은 이유로 노년에 캐나다까지 가서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 

기대에 찬 얼굴로 대답을 기다리는 그에 대고 캐나다 생활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영어 공부의 지난한 시간을 줄줄 읊었다. 그의 눈을 바라보는데, 슬픈 빛이 돌았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 어른의 오랜 꿈을 짓밟을 수도 있다. 나는 그의 소원이 그냥 지나가는 짧은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 “선생님, 캐나다 가기 전에 영어공부로 준비 하고 가시는 게 어떨까요?” 별 제안 아니었는데, 그는 정답을 얻은 것처럼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진지했고 영어 선생인 내 앞이라 내내 겸손했다. 그의 ‘낡은 꿈’을 돕고 싶었다. 

삼학년 아이들과 공부하는 교재 몇 권을 내어드렸다. 우리는 잠시 영어 공부를 했는데, 그는 기본 문장은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든 오셔서 질문하셔도 좋다고 하니, 잠시 머뭇거린 선생님은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책을 가져왔다. 가만히 책 평가를 기다리고 계셨다. 처음 보는 문법 책은 선생님처럼 투박하고 정직했다. “이 책으로 공부하면 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좋은 책이에요.”  그의 눈에 희망이 보였다. 예순의 ‘낡은 꿈’이 꿈틀거렸다. 

그가 퇴직하는 날이다. 알아주는 이 없는 한 초등학교 시설관리실 선생님의 초라한 마지막 날. “참 좋은 곳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말에 뭉클했다. “내가 하는 일이 아이들이 쓰는 물건을 다루는 일이니까 분명 의미 있는 일이겠죠?”라며 서글서글 웃곤 하던 그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것은 오랜 꿈을 가진 사람의 삶의 온도였다. 학교에 있어서 그는 꿈을 놓지 않았는지 모른다. 학교에서 작은 사람들이 꾸는 꿈과 함께 살며 그의 꿈도 살피고 싶어졌을 것이다. 다시 만날 땐 선생님이 읽은 영어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 헤는 맘으로 영어를 공부하며 ‘낡은 꿈’을 이룰 그날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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