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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내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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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7-25 11:27 조회5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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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네 개의 산과 평지를 이어 도성을 축성한다. 무인이었던 태조가 국방을 튼튼히 하고 도성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한양도성은 600년 역사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에는 각자가 있다. 각자는 성돌에 새긴 글씨이다. 공사 실명제에 따라 도성 건축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아라비아 숫자가 없던 시대에 순번을 정하기 위한 선조들의 방법이 있었다. 전체 성곽길 18.6km를 600척 단위로 97개 구간 나눠 천자문을 새겨넣었다. 천자문 각자이다.  

 

지역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도 있다. 한양도성은 태조대 때 각 도의 민정을 동원하여 축성하였다. 각각 다른 지역에서 온 민정들이 어떤 구간을 맡아 공사를 담당했는지 기록한 각자이다. 97간으로 나뉜 도성길 중 1~9 구간은 함흥 이남의 민정들이, 10-17 구간은 강원도 민정들이 맡았다. 이렇게 명확히 어느지역 백성들이 와서 축성에 담당했는지 기록해 두었다.

 

성곽에 문제가 생기면 각자에 쓰인 담당했던 사람들이 책임을 졌다고 한다. 시대가 지나 숙종대 이후부터는 백성이 아니라 군대에서 한양도성을 관리하였는데, 군대 이름이나, 감역과 감독관들의 책임구간, 석수이름까지 새겨놓은 각자 성석도 발견된다. 자주 가는 목멱 (남산) 구간은 경상도 민정들이 와서 도성을 쌓았고, ‘금위영’ 군대가 담당했다는 각자성석이 보인다.  한양도성을 걸으며 시대별 각자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자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 가운데 한 이름이 있다. 안이토리(安二土里), 들으면 기억하기 쉽고 어감이 좋다. 한자도 쉽다. 순우리말 이름으로 둘째 아들이라 ‘이돌’이라 하였는데 한자로 ‘이토리’라고 적은 것으로 보인다. 한양 도성 전체 각자에 이이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가 세군데 있다. 기술책임자인 석수 편수 안이토리(石手邊首安二土里) . 석수이니 그의 신분은 평민이었을 것이다.

 

석수로서 실력을 인정 받고 편수가 되어서 도성 각자에 세번이나 등장하였다. 그런데 그의 이름 안이토리는 도성의 각자가 아닌 국가 공식 기록물인 ‘승정원일기’ 1711 (숙종 37년) 4월 8일자에 또 한번 등장한다. 석수 안이토리씨가 수구문을 짓는 공사를 하다가 돌에 깔려 죽었다는 것이다. 한양도성에 그는 제 몫을 다한 청춘을 녹여낸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가 얼마인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그의 인생을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각자에 새겨진 이름으로 그의 삶을 상상해 볼수 있다.

 

성곽길을 걷다 그의 이름을 만나 나직하게 불러보다 내이름으로 새겨진 일을 세어보았다. 매일 작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영어수업이 그럴 것이고, 학교에 내 이름을 적어 제출하는 학습 지도안, 도성길라잡이로서 하는 해설, 무엇보다 ‘우아한 비행’에 새겨진 글과 이름은 공적인 기록으로까지 남는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것들이 내 삶이고 가치관의 표현일 것이다. ‘두고두고 내 이름을 달고 남을 내 일과 글을 통해 나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며 누군가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길것인가 곰곰히 생각해 본다.’ 매일 만나는 작은 사람들과 구성원으로 일하는 학교에, 도성에서 만나는 시민들과 글로 만나는 독자들에게 나는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까.

돌을 떠서 나르고, 쪼아서 모양을 만들어, 땅을 파고 다지며 도성을 쌓아 올린 후,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을 석수 안이토리, 그 자신이 제일 잘 알 것이다.  

 

얼마나 그가 한양도성을 사랑했는지, 그의 땀과 열정이 의미가 어떤것인지. 오늘 내 이름으로 달고 나갈 이 글앞에 묻는다. 내게 맡겨진 것에 옳은 마음을 담고 있는가, 마지막에 나는 내 이름에 자랑스러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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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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