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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라다크를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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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9-18 08:50 조회3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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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성 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우리는 우주 한 귀퉁이 지구 같지 않은 곳에 추락했다. 온통 기괴한 암석산과 황량한 돌무더기 벌판. 여기는 필시 화성? 달나라? 먼 산자락 위로 하얀 운무와 만년설만이 덩그러니 내려와 앉았다. 어디를 달려도 장엄한 모습의 황토색 산들이 우뚝우뚝 서 있다.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마냥 가슴이 쿵쾅댔다. 

 히말라야 산맥으로 뻗쳐진 인도 최북단, 말로만 듣던 여행경보 철수 권고 지역 잠무 카슈미르 주다. 서쪽에는 파키스탄, 북동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티베트 자치구가 있다. 국경지역이라 인도 군인 60%가 주둔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심심치 않게 폭동이 일어난다기에 여행 욕망을 자제하며 1년을 망설였다. 

 여기에 온 이유를 물으면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과 인도 영화 ‘세 얼간이들’과 하늘호수 ‘판공초’ 때문이라고 하겠다. 

  잠무 카슈미르 주의 절반을 차지하는 라다크, 3,500m 레 공항에 발을 내디디니 군인들이 쫙 깔렸다. 벌써부터 감시가 삼엄하다. 외국인들은 공항에서 상세히 심사를 받고, 판공초를 갈 때도 몇 번 더 허가를 받는다.

  두 애들과 나는 첫날부터 고산병에 시달린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애들은 깨워도 맥없이 잠만 잔다. 호텔에서 산소 호흡기를 껴도 소용이 없어 병원으로 데려가 산소 호흡기를 끼고 여러 가지 약물치료를 받았다.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당장 집으로 가야 하나. 

  이튿날 우리는 온종일 끝없이 펼쳐진 히말라야 산야를 달렸다. 네팔에서 멀리서만 봤던 神 같은 존재 히말라야가 꿈인 양 우리 곁에 있다. 곳곳에는 인도 군부대가 진을 치고, 계곡마다 인더스 강이 철퍼덕거리며 무섭게 흘러간다. 천수관음상과 36장 탕카(불화)가 있는 스피툭 곰파(사원)와 천년된 사원 알치 곰파를 보고, 풍광이 아름다워서 달나라로 불리는 동네에 세워진 라마유르 곰파를 찾아갔다. 그 옛날 티베트인들이 건축한 사원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그려진 탕카들이 완벽하게 보존돼 놀랍다.  

  간혹 깎아지른 산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동네가 눈에 띈다. 죄다 암석밖에 없는 이곳에서 그들은 뭘 해먹고 살아갈까. 가이드가 차를 세우더니 두 갈래 물길이 하나로 연결되는 곳으로 안내한다. 왼쪽 붉은색 강물은 티베트에서, 오른쪽 황토색 강물은 라다크에서 흘러오는 것이란다. 두 물줄기는 합쳐져 파키스탄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다음날 새벽 우리는 세상에서 2번째로 높고 험한 도로 5,360m 히말라야를 넘어야 갈 수 있는 판공초를 향해 달렸다. 왕복 11시간 거리다.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서로 모른 체 한다. 한참을 달려 판공초로 가는 산 입구에 닿으니 맞은편에서 차들이 벌써 내려온다. 기사들끼리 차를 세워 뭐라고 하더니 비가 와서 낙석으로 길이 막혀 못 간다는 것이다. 되돌아오는 여행자들의 얼굴이 낙담에 가득 찼다.  응, 우리는 끝까지 가자. 직접 확인 할 때까지 믿을 수 없으니 무조건 가자고 재촉했다. 우리는 계속 달렸다. 달릴수록 하얀 설산은 가깝게 다가왔고, 눈발은 거세졌다. 남인도서 4년간 못 본 눈을 맞는다. 구불구불 울퉁불퉁 푹푹 파인 천길 낭떠러지 히말라야 산길. 아래를 보면 가슴이 철렁, 앞을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옆을 보면 장관에 감탄. 구절양장 산길을 돌고 도니 산중 가장 높은 곳 5,360m 부근 창라 휴게소다.

  차가 달릴수록 헉헉 숨이 차다. 길은 잘 뚫려 있었다. 그들의 거짓말이었다. 길이 험해 고생하기 싫은 거였다. 우리의 얼굴에는 목적 달성의 미소가 슬며시 번졌다. 그래, 남의 말을 다 믿을 필요는 없어. 소신대로 사는 거야.

  오래된 미래의 저자는 10년간 라다크에 살며 이곳은 가장 생태적이며 인간적이 라고 말하며 환경문제에 부닥친 현대문명의 미래로 내다봤다. 그러나 관광지로 개발 되면서 가진 것에 불만 없이 행복했던 사람들은 가난을 알게 되고, 자식들을 다른 도시로 내보내 교육을 시키고, 편안함을 즐기게 되었다며 산업화됨으로 인해 손실을 둘러싼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멀리서 옥빛 호수가 슬그머니 나타난다. 판공초다. 히말라야는 어디서나 제각각 위엄 있게 서 있었다. 레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4,350m 위에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 판공초. 총길이 134km로 인도에 40%, 60%는 중국과 연결돼 있다. 파란 하늘, 구름, 만년설산, 타르초(티벳불교 깃발), 하늘이 호수되고 호수가 하늘 되는 거울처럼 맑은 판공초. 아름답다. 손을 물에 담그니 영혼까지 맑아지는 듯. 여기서 영화 ‘세 얼간이들’이 All is well(다 잘 될거야) 이라고 주문을 걸던 그들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 봐. 성공은 뒤따라 올 거야.’ 

  판공초를 보고 돌아가는 길 4,980m 지점에서 차들이 꼼짝 못하고 있다. 눈은 퍼붓고 빙하는 넘치고 산길은 끊기고, 차들은 계속 정체 되고 있다. 애는 고산병에 토하고 열나고 정신을 못 차려 간신히 차를 돌려 근방 군부대에서 산소치료와 약물을 투여 했다. 그리고 다시 그 지점 차는 4시간 넘게 고산 위에 있다. 고산병이 도진다. 날은 춥고 어둡고 눈은 퍼붓는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다. 참자. 잘 될 거야. 

  문제는 산 여기저기서 불어난 빙하가 길을 잘라 놓은 것. 사람들이 모여 간신히 복구돼 우리는 다시 천길 낭떠러지 고도를 달렸다. 얼마나 덜컹거리는지 온몸의 골이 흔들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기사는 깜깜해지기 전에 달려야 했는지 황야의 무법자처럼 와일드 하게 달리고 달렸다. 히말라야를 집어 삼킬 듯 질주했다. 우리는 묵묵히 히말라야를 즐겼다. 

  우리가 라다크로부터 배운 것들은 포기하지 말고 극복하는 것. 인내였다. 15살, 10살 애들은 오늘의 모험을 통해 한층 성숙한 자세로 살아가리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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