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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참 좋은 사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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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2-12 11:16 조회4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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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가는 길벗, 아픈 과거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김선생, 이제 퇴근합시다.” 당직 어르신이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는 아직 안 되었다. 사실 어르신을 기다렸다. 안 오셨으면 나는 해야 할 것들을 끊지 못했다. 약속이 없는 어떤 날 학교가 좋아 혼자 교실에 남았던 나를 몇 번이나 잡으러 오셨다. 어르신의 가장 중요한 일, 모두가 학교를 빠져나간 후 건물 전체 알람을 키는 일을 미루고 기다리다 오신 것이다.

 

“일이 너무 많아요.” 학기 초라 바쁘다고 엄살을 부리니, 일만 많고 돈은 조금 받는 거 아니냐며 내 편을 들어 주신다. 한창인 일을 끊고, 가방을 주섬주섬 생기면서 시작한 대화였다.“김선생, 혼자 살아요? 올해 몇이지? 부모님은 외국에 계시다고 했나?” 어둡고 긴 복도를 걸을 때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신다. 이내 미혼인 아들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겠냐며 나를 보고 수줍게 웃으신다. 묻지도 않은 아드님의 프로필을 읊으신다.

흐뭇한 미소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연세 지긋한 어느 아버지의 모습이다. 멋진 아드님이라며, 한껏 치켜 세워드렸다. “그런데 저를 잘 모르시잖아요.” “학교에서 이렇게 매일 보는데 잘 아는거지.” 인사를 잘하고 웃음이 많은 나를, 어르신이 좋게 보아주신 것이다. 

어르신처럼 학교에서 일하는 내 모습에 반해 몇몇 분들이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캐나다 교포 영어 선생으로 나를 정의 내리기에는 부족한데 어디서부터 나를 말해야 할까. 상대는 세상과 사람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나를 신기해하거나, 한국에 와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나씨는 제가 만났던 분들과는 다르네요. 그게 뭔지 궁금해요. 한나씨를 더 알고 싶어요.” 나 역시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환영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달랐다.

 

소개받은 분과 그럴싸한 곳에 가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했지만 결국 지루했다.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와 달리 상대는 세상에 관심이 별로 없어 보였다. 결국, 그들은 나의 유별난 관심사와 지치지 않는 열심을 부담스러워했다. 나 역시 사유에 자극을 주지 못하는 남자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나에게는 함께 여행을 기꺼이 떠날, 숨 가쁘게 산을 오른 후 정상에서 같이 환호할,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달릴, 동그랗게 앉아 글을 읽고 쓰는 벗들로 삶이 풍성했다.

 

엄마는 내가 몇 살인지 매년 헷갈리지만, 딸이 마흔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남자 많은 한국에 가 있으니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엄마의 바람은 매번 꺾였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나 자신이 참 좋은 사람이 되면, 가까이나 조금 멀리서나 누구에게도 좋은 세상이 되어 늙어감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삶을 사랑하다 보면 같은 곳을 향해 가는 길벗이 곁에 있지 않을까. 서로의 육체와 영혼뿐 아니라, 비겁함과 비루함, 불안한 미래와 헝클어진 과거까지 사랑할 ‘참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서로를 자극하며 세상과 사람을 사랑할, 타인에게 함께 ‘좋은 세상’이 될 사람을.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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