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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역사(歷史)를 바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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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3-16 09:27 조회3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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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방 벽에 발려진 단색 무늬의 도배지
그 바로 뒤엔
학교 소운동장 만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흙과 나무로 집을 만들 때부터
지금 내가 나의 가슴 위에
철근으로 집을 만들어 생활할 때까지
집터의 소유가 바뀌고
방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한꺼풀의 포장을 해서 손때를 지우고
눈을 가렸다
그래서 나의 집과 벽은
역사처럼 몇번씩 몇번씩 바뀌고
몇 평 안되는 방에서도
역사처럼 손때를 지우고 눈을 가렸다
 
봄에 물오른 나무처럼
벽으로 내 키만큼의 물이 올라
도배지를 사다
새로 도배를 한다
나의 상처를 봉하듯
벽의 상처 부위만큼의 도배지에
풀을 칠하고
벽에 대고 물오른 방향을 따라
두 손으로 도배를 한다
그러나 여간 힘에 겨운게 아니다
풀이 마른 나의 손처럼
도배지는 갈라지고
갈라진 사이로 피같은 풀이 흘러 나오고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언젠가 나의 모습도 숨겨질 것이다
몇 몇의 계절이 지나서 내가 손수 작은 역사에
또 다른 한 꺼풀의 역사를 발라 놓을지
아니면 내일이라도 집 주인이 바뀌면
그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나의 생활을 옛 역사라 부르며
나의 흔적을 지워 놓을 것이다
거짓말처럼 지워 놓을 것이다
 
 
2.
성숙한 손을 가진 나를 생각한다
나 자신부터 믿기지 않는
성숙한 손의 소유
그 소유의 의미는
- 이 밤이 지나고서
지금보다 어른스럽게 자란 손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의 집의 역사를 만들 작업
끈적한 몸으로
아직 이름 불리워지지 않는 나무로 된
집의 기둥을 발라
얼마 후에라도 나무에 붙여질 이름을
아예 없애버리는 작업 -
 
 
3.
나는 지금
예전에 나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도배를 한다
손에 끈적한 풀이 묻는다
아주 끈끈한 역사가 묻는다


유병수/ 시인. 소설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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