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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수첩] 어머니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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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5-09 12:30 조회3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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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떨어져 산 지도 어언 이십 여 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한국을 떠나 머나먼 캐나다에 이민 와서 살게 될 줄을 이불 호청을 갈 때마다 바늘 귀에 길게 실을 꿰던 딸을 보며 옛 속담을 종종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이미 아셨을까, “너는 이리도 길게 실을 끼는 것 보면야 분명히 먼데로 시집을 갈란갑다.”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살게 된 이후 어머니는 아쉬운 국제 통화 끝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더니만 내가 말하디, 분명히 먼데로 시집을 간다고. 니가 바늘에 너무 실을 길게 끼웠어야. 적당히 좀 끼재 그랬냐, 그랑께 고렇케 먼 캐나다꺼정 가서 살제. 워매 내 새끼 보고 싶은거! 같은 하늘 아래도 아닌께 보도 못하고 어쩌끄나!” 하시며 오매 불망 딸이 보고 싶으셔서 애 닳아 했다.       

 

"말이 씨가 됬어야, 나가 그 말만 안 했어도 니가 이렇게꺼정 멀리 살지는 않았을 것인디. 미안허다. 어쩌끄나! 니가 아퍼서 내가 뭐라도 해주고 싶은디. 워매, 징하다야, 꼭 뱅기만 타야 거길 강께!” 혹여 내가 몸살이라도 나서 앓아 누으면 어머니는 또 다시 당신 탓을 하시며 전화 수화기에다 대고 절절한 모정을 진한 사투리와 함께 토해내며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지 못함을 많이 미안해했다. 사실 속담이 뭐든 관심 없고 초등학생이던 나는 자꾸만 불려나가는 것이 귀찮아 될 수 있으면 아주 길게 바늘귀에 실을 꿰었었다. 마음 같아서는 실 뭉치에 감겨 진 실을 몽땅 바늘귀에 매달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불 꿰매기가 끝날 때 까지 다시는 어머니가 나를 부르지 않았으면 싶었었다. 해마다 어머니 날이 돌아오면 ‘언제 다시 내가 어머니를 위해 바늘귀에 실을 꿰는 그런 날이 올까’ 하고 생각해 본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만화 영화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동네 골목에서 왁자하게 뛰어 노는 친구들과 빨리 놀고 싶어서 그 옛날 어린 소녀는 바늘귀에 아주 기다랗게 실을 꿰어 주고 어머니로부터 도망을 쳤다. 그런 날이 내게 다시 온다면 어머니께 정성을 다하여 실을 꿰어드리고 싶다. 그리고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는 옆에서 산뜻하게 펼쳐진 이불 호청에 드러누워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은은한 풀 내음을 맡으며 어머니가 들려주는 어릴 적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답게 도란도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비록 더 이상 이제는 어린 소녀가 아니어서 바늘귀에 척척 실을 빨리 꿰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머니는 분명 내가 당신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할 것이리라. 그리고 이제는 나 역시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무리 길어도 좋으리라. 내 옆에서 어머니는 따스한 온정을 뿜어내며 분명 이야기 속에서 나의 그리운 옛 친구 들과 내가 보았던 만화의 주인공들을 다시 끄집어내 주실 것이므로.    / 정숙인 시인, 수필가.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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