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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산책]나를 바비라고 부르는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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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ohnPark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1-03 16:26 조회3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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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인/시인, 수필가(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회원)

 

내가 그 아이를 만난 때는 거친 인생의 회오리바람 속 어느 동굴에 안착해서 겨우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을 때였다.

 

하얀 피부를 가진 아기는 파랗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졌는데 나를 보고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눈이 마주칠 적마다 볼에 경련이 일 정도로 함박웃음을 건넸지만 아이는 내내 얼어붙은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직하다는데 이러다 나 자신을 들키는 것은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사실 나는 그다지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평생 무관한 일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절박한 이민자의 냉정한 현실 앞에서 다급해진 나는 보모라는 낯선 직업을 갖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게다가 그 집에는 두 마리의 애완견들이 있었는데 틈만 나면 몸을 비비고 핥으려 들어 내 혼을 쑤욱 잡아 빼놓았다. 애완동물을 친숙하게 다룰 줄 알고 동물을 좋아한다고 이력서에 써넣었는데 말짱 거짓이었다.

 

사실 살아오면서 여태껏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똥개들 말고는 내 스스로 가까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먹이를 주거나 산책을 시키고 배설물을 뒷처리하는 일은 할 줄도 몰랐다. 아이의 부모가 지켜보고 있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친근한 척 개들의 등을 번갈아가며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날 합격 소식을 통보 받았다. 내가 할 일은 아이를 재우고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면 되는 거였다.

 

오래 전에 아이를 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성격이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많이 바뀌었나 보았다. 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는 신기하게도 나를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 졌다. 아이의 부모는 재택근무를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었고 혹 외출할 일이 있을 땐 서로 교대하며 반드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집에 머물렀다.

 

나는 그 부부의 양육 가치관에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적어도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매일 부모와 마주하며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한 부를 아이에게 안겨준다 한들 부모의 무한한 사랑은 감히 쫓아올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을 받아먹고 크는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삐뚤어지지 않고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여 다른 이들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 된다고 나는 믿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결코 예쁘장한 얼굴이 아닌데도 어느 새 정이 들어서인지 귀엽게만 보였다.

 

아이는 나와 그렇게 정을 나누며 두 돌을 맞았고 세 돌을 넘겼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여 아이는 세 살이 되었는데도 말을 못하였다. 걷는 것도 16개월 중반에 들어서서 걷더니 모든 행동발달상황이 느렸다.

 

세 돌이 되어갈 때 겨우 엄마, 아빠라고 말했다. 책을 무척 좋아하여 많이 보는데도 아이는 전혀 말할 줄을 몰랐다. 내가 책에 적힌 낱말들을 반복하여 소리내면 아이는 슬며시 책장을 덮거나 손으로 귀를 틀어 막았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 애써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아이가 전혀 말을 할 줄 몰라도 나는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이는 눈빛이나 다양한 몸동작을 통해 원하는 것을 내비쳤고 나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잘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는  부모를 방에서 내쫓을 만큼 나와 죽이 잘 맞았다. 우리는 매 주 커뮤니티 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시립 도서관을 방문하여 책 읽기를 하였다.

 

사회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는 엄청난 발전을 하였고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나는 아이를 낳은 부모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 할 때마다 함께 속상해했고 아이를 껴안고 다독이며 같은 편이 되어 주었다. 아이가 세상을 배워 나가는 동안 나는 아이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배웠다. 우리는 진심을 담아 정성껏 시간을 함께 나누었다.

 

우리 둘을 지켜본 많은 이들이 놀라워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모자(母子)관계인줄 알았다고 하였다. 그렇듯 나는 내 아이에게 온 정성과 사랑을 쏟았다. 

 

세 살 생일을 앞둔 어느 날, 아이는 문득 나를 바비(Barbie)라고 불렀다. 무슨 말일까 싶어 아이를 쳐다보자 아이는 연거푸 바비를 외쳤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 재차 물으니 아이는 바비라고 분명히 말했다.

 

아름다운 파란 눈이 그윽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바비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 달라는 듯 간청하듯 보였다.

 

순간 감격하여 아이를 와락 껴안았다. 겨우 엄마,  아빠 소리만 하던 아이가 나를 바비라고 부르는 거였다. 물론 내 이름은 바비가 아니었다.

 

아이의 부모는 언제나 정식으로 내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아이도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아이는 태어나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아본 적도 없었다. 아이는 그 날부터 나를 철썩같이 바비라 불렀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바비를 찾았다. 아이의 부모는 당황하여 바비가 아니라고 말해주었지만 아이는 아랑곳 없이 나를 바비라 불렀다. 아이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바비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기쁘고 행복했다.

 

아이가 왜 나를 보고 바비라고 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묘하고도 나른한 행복감이 가슴에서 퍼져나감을 느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온 대지에 완연한 봄기운이 살포시 젖어 들어 땅을 밟아도 구름을 밟는 듯 따사로움이 촉촉히 베어든 솜사탕같은 공기를 크게 한 입 베어 먹으며 넘실거리며 다가오는 아지랑이를 두 팔로 마구 헤집으며 동무들과 뛰어 놀던 유년 시절에나 느꼈을 법한 달착지근한 행복감에 마구 온몸이 떨려왔다.

 

아마도 그것은 아이가 나에게 주는 믿음과 사랑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엄마, 아빠 다음으로 나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해주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아이로부터 오는 행복, 나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아이에게 나 역시 더욱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야 함을 느꼈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한없이 평온하고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아이의 맑고 티없는 순수함이 세상의 온갖 때로 물든 내 영혼을 씻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제11회 신인상 가작 수상작)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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