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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연재소설] 비 온 뒤 무지개가 피어난다 - 42. 빛과 비의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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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11-03 14:19 조회3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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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이 밝아올 시간인데도 하늘과 바다에 드리운 회색 커튼이 걷히질 않았다. 그러더니 창에 후두둑 빗방울이 들이쳤다. 

밴쿠버는 건기와 우기, 두 계절로 나뉘었다. 십 년 전만 해도 가랑비 정도라 비 맞으며 걷는 낭만을 누렸으나 근래에는 장대비가 쏟아져 우산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청랑한 빛과 멜랑꼬리한 비의 변주곡을 즐기지 않으면 밴쿠버뜨기가 될 수 없었다.

최신 카메라로 빛의 마술을 즐기려 하는 찰라 들이닥친 빗줄기의 훼방, 어쩌지? 화끈하고 황홀한 한여름밤의 꿈에서 깨어 칙칙한 겨울숲에 드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과 함께라는 것. 천사의 얼굴로, 도깨비 장난을 일삼는 아이들의 24시를 찍는다면 잿빛 우기의 터널도 쉬 빠져나갈 성싶었다. 

평생을 살다보면 화창한 날도 있고 폭풍우치는 날도 만나기 마련이다. 맑은 날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의 앙상블을, 궂은 날엔 비 온 후 피어날 무지개를 꿈꾸면 되는 것을. 

흑백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앤틱 카메라가 필요했다. 찬우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응답이 없었다.“연소희입니다. 이제야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 카메라를 돌려받고 싶은데, 연락 주십시오.”라는 멧시지를 남겼다. 망각의 갈피에 숨겨둔 가족과  친구들이 살아나고, 미처 삭제하지 못한 홍대앞사건, 그리고 흰 지팡이와 검은 색안경이 더듬더듬 일어났다. 명치 끝이 아파왔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사진의 색조가 단조로워졌다. 흑, 회, 백 삼색의 농담(濃淡)만 남았다. 허화를 버린 사진이 명징해지면서 동양화 같은 절제와 생략의 미가 돋보인다면서 제이콥이 칭찬을 했다. 그리곤 은근히 다음 단계 공부를 권유했다.“편집도 직접 해보고 음향도 다루어 봐야죠. 친구네 영상실을 빌려 놓았어요.”고. 하지만 더이상의 진척은 불가능했다. 교사 파업으로 개학이 늦어져 집에만 있는 찬우와 언제 형부가 쳐들어와 애들을 채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언니 때문에 밤시간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창과 지붕이 들썩거릴 만큼 세찬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이었다. 잠 못들고 뒤척이다가 희미한 초인종소리는 들은 듯싶었다. 귀 기울이면 그쳤다가 잠들라치면 또 울렸다. 누구일까? 벨소리가 뚝 그쳤다. 고양이 걸음으로 현관 앞에 섰다. 아무 기척이 없었다. 소란 뒤 침묵이 더 불안하고 기분 나빴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가 현관 문을 조심스레 밀쳤다. 녹슨 철제문이 끼이익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밤의 적막을 찢었다.
 
문밖에 작은 물체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하도 작아 젖은 낙엽처럼 보였다. 그네가 문을 열고 나가자 문 뒤에 숨어있던 그림자가 그네를 밀치고 집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었다.

“누구 누구세요? 찬우야, 언니. 얼른 일어나.  도 도둑이야! ”

그네의 외침이 빈 홀에 울렸다. 사막처럼 적막하고 공허했다.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다가 물체를 밟았다. 물컹했다. 거머리처럼 발목을 감아쥐는 손이 아니었다면 무시하고 들어갔을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네의 눈이 등잔처럼 커졌다. 억새처럼 파리해진 찬우의 보모, 메리가 애절한 눈빛으로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여길. 그보다 왜 이 밤중에? 또 저 사람은 누구고?”

메리를 돌보는 일과 괴한을 쫓아내야 하는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지 못한 그네가 현관께에서 허둥대는 동안 괴한은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언니의 비명소리가 났다. 그네는 메리를 안고 들어와 소파에 눕힌 후 소란이 벌어진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언니와 괴한이 아이들을 두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네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형부가 오랫동안 아이들을 데려갈 기회를 노렸다는 것, 일부러 폭풍우 심한 날을 골라 메리를 앞세워 기습적으로 쳐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형부의 납치 행각을 막을 법적 권리가 그네에겐 없다는 것을.

아이들을 눈 앞에서 약탈당한 언니가 밤마다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녔다. 육덕지던 몸피가 볏단처럼 홀강해졌다. 혼백이 빠진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는 언니와 쇠약한 메리를 돌보느라 그네의 상심과 절망은 잠시 휴면상태에 들어갔다.

사람은 참 악의적인 동물이다. 타인의 불행에 은근한 위안을 받는 걸 보면.

스튜디오가 휑하니 비었다. 언니는 자유를 저당잡힌 엄마의 행복을 택해 귀가를 했다. 언니의 몽유병은 자식 강탈에서 비롯되었다. 하니 애들 곁에 가야 낫는 병이었다. 메리 역시 찬우 곁으로 돌아와 치유가 되고 있다. 어미 뻐꾸기처럼 아기새 맡겨둔 둥지를 배회했을지도. 성당 마리아상 그늘에 숨어있던 그림자와 제이콥 집의 이층 커튼 뒤에 숨어있던 눈길도 메리였을 게다. 그들도 둥지를 떠나겠지. 언니와 조카들처럼, 그네처럼.
 
의외로 그 날은 빨랐다. 그네가 찬우 아버지에게 멧시지를 남겨둔 지 보름쯤 되었을까. 앤틱 카메라를 보낼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이틀 뒤, 찬우 아버지가 카메라를 들고 주소지에 날아왔다. 그리곤 다짜고짜 물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중 어느 것을 먼저 듣겠소?”

그네는 나쁜 소식을 먼저 듣겠다 했다. 맛있는 것은 아껴두었다 나중에 먹는 그네 습성대로.

“그러구려. 맹인 시인 설재희 씨가 운명을 달리 했다오. 루푸스를 앓고 있었다는데 지난 번 홍대 앞 사고로 늑막을 다쳐 지병이 도졌나 봅디다.”
믿기지 않았다. 찬우 아버지가 못을 박듯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미안하오.하지만 알려주지 않을 수 없어서. 그의 마지막 시집 <낙타의 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사왔다오.”

시집 표지에는 낙타 한 마리가 열꽃 피는 붉은 모래언덕을 넘어가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분위기가 꽤 낯익었다. 표지 날개를 넘겨 보았다. 시인의 약력과 사진작가의 이름이 적혀있는. 그랬다. 설재희는 사망했고, 사진은 제이콥의 것이 틀림없었다.

“좋은 소식은, 이 카메라에 찍혔던 사진들로 *인디 필름을 제작했다오. 미스 연이 허락한다면 내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싶소만. USB에 담아왔으니 보고 제목과 상영 여부를 결정해 알려 주오 .”하며 몽당연필 같은 USB를 넘겨주었다. 

찬우 아버지가 찬우와 메리를 데리고 떠나자 그네 홀로 빈 둥지에 남았다. 


*인디 필름(Independent Film): 독립 영화

김해영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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