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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오석중의 살아가는 이야기] 내 마음의 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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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2-16 09:04 조회4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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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불혹이라는 40이 되면서 직장에서는 간부가 되고 가정에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지위가 높아지는 만큼 아는 것이 많아지고 아는 것이 많은 만큼 목소리도 커진다.

인생의 절정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노인이 되서나 심지어 30대도 10대나 20대를 보면 “좋은 때다, 좋은 때야”하면서 자신의 지나간 청춘을 떠올려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40대야 말로 인생의 절정기로 신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든 면에서 가장 강한 시기가 아닐까한다. 

세상은 내 위주로 돌아가고 무거운 책임도 즐겁게 지고 가끔씩 보이는 눈 덮힌 더 높은 봉우리도 있지만 내가 있는 높이로도 시야가 확 트이게 넓고 시원하고 상쾌하다. 그렇더라도 이때가 황금기는 아니다. 그러다가 지명(知天命)이라는 50을 지나고 귀가 순하다는 예순(耳順)을 지나고 요즘에는 환갑잔치처럼 한다는 칠순(七旬)을 지나게 되었다. 공자(孔子)는 일찍이<논어(論語)>“위정(爲政)”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신의 인생을 세웠으며,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렇게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학문의 심화된 과정을 술회한 것이다.

공자의 이 말로부터, 15세를 지학(志學 - 학문에 뜻을 둔다.), 30세를 이립(而立 - 인생을 세운다.), 40세를 불혹(不惑 - 미혹되지 않는다.), 50세를 지천명(知天命 - 하늘의 뜻을 안다.), 60세를 이순(耳順 - 귀가 순리대로 들린다.), 70세를 종심(從心 -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럼 내년이면 종심이 되는 나는 어떤가?

말은 (비워라) (잊어라) (버려라)라며 (무소유)를 외치지만 그동안 가지고 채우고 모으기만 하던 생활습관으로 나와 나의 의견이 달라서 내안에 내가 둘이상이 되는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마음도 여러 가구만큼 복잡해지기만 한다. 

나는 아직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신발 끈을 오래 맨다든지, 돈 내야하는 시간에 화장실에 간다든지, 깜빡 잊어버리고 지갑을 안가지고 나왔다는 일은 없지만 10년 전보다 돈이 아까워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앞으로 돈을 벌 시간이 많이 없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당장 내가 가난한 노인이라는 것도 문제지만 일을 하면 돈을 써도 매일 어느 만큼 돈이 들어온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그것이 불확실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건 돈만 아까워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가 아파도 당연한 사촌이 땅을 사는 일. 남의 자식이 잘 되는 일, 동갑내기가 십년은 젊어 보이는 일에도 마음이 불편한 건 믈론이고 더 하찮은 일에도 섭섭하고 화가 나고 샘이 난다. 그런 나를 보고 스스로 깜짝 놀라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왜 일까?

공자의 말씀으로는 나이를 먹을수록 이순이 되고 종심이 되면 그 때가 추수를 하는 황금기여야 맞는데 사람들은 황금기가 40대라고 말하니 나도 그들처럼 그 때가 황금기라고 생각하고 살았을까? 아니면 그 때는 황금기가 다른 때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최고로 오른 증권가가 언제인지를 모르듯이 말이다. 그러니 그보다 더 젊은 때가 전성기처럼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노년이 황금의 완성기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가난할 때는 곡간이 차는 것만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지금은 노년이다.

사전을 보니 곳간은 곡식을 비롯하여 다른 물건도 넣어두는 곳이고, 곡간(穀間)은 곡식만을 넣어두는 곳이다. 옛날에는 현물이 가치가 있어서 가지고 있는 물건에 따라 경제력이 평가되었고 부잣집에는 그 만큼 곳간이 많았다. 한옥에서 곳간을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행랑채가 곳간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때문에 공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안행랑, 중행랑, 바깥행랑 등으로 행랑채가 늘어나곤 했다.

노년에는 곳간이 작더라도 가득 찬다. 그런 곳간이 나에게도 두 개나 있다. 재물의 곡간과 정신의 곳간이 그것이다. 곡간을 물질적 부동산이라고 한다면 곳간은 정신적 부동산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곳간이던 곡간이던 간에 곳간에 얼마나 물건이 쌓여 있느냐 만의 문제가 아니라 곳간이 얼마나 큰가도 문제인 것이다. 

곳간이 크면 물건을 많이 쌓을 수 있지만 만족을 얻기 힘들다. 하지만 곳간이 작으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더 저장할 수가 없다. 곡식을 쌓는 곡간은 더 이상 추수할 일이 없으니 더 지을 필요가 없는데도 자꾸 늘리기만 하니 같은 물건이라도 곡간이 텅 비어있는 듯하고 정신을 쌓는 곳간은 죽을 때 까지 쌓아야 하고 알아야 할 물건이 많은데 책을 읽지 않고 남의 좋은 이야기를 더 이상 경청 않고 내 말만 하고 있으니 거꾸로 되도 한참 거꾸로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매사에 심기가 불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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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중 (시인)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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