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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오석중의 살아가는 이야기] 생명과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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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4-13 11:25 조회3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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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십 년 전에는 등사판(がりばん가리방)이 인쇄를 제외하고는 많은 양의 복사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기였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시험문제나 여러 명에게 나누어줘야 하는 공문 따위를 이렇게 복사했다. 또 복사하는 방법으로 먹지가 있었다. 

군에 있을 시절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면 항상 같은 말만 쓰게 되는 것이 싫어 이름을 빼고 보편적인 내용을 복사해서 보냈다. 

맨 위에 것은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4장 째쯤 돼서 아주 흐린 편지를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들은 나의 고약한 머리에서 나온 기상천외한 편지를 "공문 잘 받았노라"며 답장을 보내왔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시를 읽고 베끼는 노트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대체로 어디서나 좋아하는 문장과 보관하고 싶은 지식, 읽고 나서 다시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베꼈다. 

하물며 내가 쓴 편지도 베껴서 보관하는 편지재록(便紙再錄)이라는 노트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그나마 지금 알고 있는 대부분의 시와 지식 따위는 다 이때 베낀 것 들이다. 

베끼기는 내가 강추(강력하게 추천)하는 시 읽기의 방법이다. 시를 읽는 목적은 그 시를 읽고 그 시에 담겨있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너무 빠른 읽기는 시를 읽고 교감하는데 최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복사와 인쇄는 같은 내용을 여럿 보관하는 방법이다. 요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 폰은 복사의 가장 고급기능인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기기다. 모든 생활이 빨라진 만큼 복사도 빨라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걸 싫어하고 또 지루한 것도 싫어한다. 이것도 하나의 모순이다. 

그러나 이 모순이라는 점이 빠르게도 지루하게도 자신을 운영하는 열쇄이며 극복하는 방법이다. 

수명은 찰라 면서 수명은 팔십년이라는 긴 세월이다. 순간을 팔십년으로 살수도 있고 팔십년을 찰라로 살수도 있다.

사람에게는 복사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오래 같이 사는 부부가 닮는 것은 이 복사하는 기능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실 이 복사하는 기능은 부부라서 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은 보이면 보이는 대로 복사를 하는 생물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유다.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되는 건 어떤 이유 건 간에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복사는 하나의 번식 수단이다. 번식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이런 불만을 부모에게 토한다. "왜, 나를 나았지요?"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그건 마치 과일가게에 있는 과일이 "나는 왜 사과지? 왜 나는 비싼 배로 태어나지 못하고 사과인 거야!" 하고 말한다면? 이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의 과거는 나의 부모인거고 나의 미래는 나의 자식인거다. 원본을 떠나 복제는 없다. 

원본이 없이 복제는 불가능하다. 나는 복제품이면서 원본이다. 원본은 복제품을 떠나서 자신을 확장할 수 없다. 복제품이라는 내가 원본이라는 나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시대는 복제품의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생명이 없는 것은 물론 생명이 있는 것까지 복제한다. 

저작권보호법이 특별한 사람들만 알아야하는 특별한 법에서 보편적인 우리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스마트 폰은 한국에 있는 친구나 친척들의 저녁식사 시간을 동영상으로 이곳 캐나다까지 시간차 없이 보내준다. 

한국에 있는 그들이 바로 옆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좋은 세상이다."라고들 말한다.

김삿갓이 한잔 술을 얻어먹고 초상집에서 써준 말이 유유화화(柳柳花花)라고 한다. 그 뜻을 물으니 버들버들하다가 꼿꼿(꽃꽃)해졌다는 말이라고 하더란다. 

어릴 때의 나는 "아니 이런 걸 시라고 한다면 내가 쓰는 일상적인 말도 다 시다." 라고 건방지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 먹을수록 그 시가 기억에 남았다. 생명은 곧 움직임이라는 말, 죽으면 움직임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편안함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죽음에 가깝다는 말이다. 움직임이 생명이다. 

100살을 넘는 장수 노인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죽기 전까지 움직이고 일을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죽음과 생명의 두 가지를 다 경험하면서 산다.

쉬지 않고 일할 수도 없고 일하기만 할 수도 없다. 편안함도 좋고 재미있는 노동도 좋다.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시 베끼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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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중 (시인/수필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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