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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오석중의 살아가는 이야기] 이상한 원어민의 나라, 이상한 나라의 원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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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세익기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7-20 11:35 조회3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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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나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나는 그런 문제를 적극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나름 게으른대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 살면서 먹고 사는 장사에 필요한 영어실력은 향상시키지 못하면서 한국어의 원어민으로서의 순수함을 훼손할까 두려워 착각 아닌 착각을 당연한 것처럼 붙들고 사는 모호한 부분이라든지.

 

재외동포가 그 나라 말을 더 잘한다는 오해를 하던 시절은 갔다. 모처럼 모국방문을 하면 나의 모습은 행색만 외국인과 닮았지 몇 십 년 전에 쓰였던 지나간 시절의 한국말을 하는 이상하고 어정쩡한 사람이다. 현실과 단절 되었다가 문득 어디선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네트워크의 발달로 잘 모르는 외국어 뉴스나 영화를 보는 일은 점점 드물고 대부분 시간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실시간 한국어 뉴스나 영화를 보지만 그렇다고 지리적으로나 시간상으로 보아 멀리 떨어져 사는 노인이 모두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비틀린 조어들, 이상한 합성어들, 세월의 강으로 가보면 하류로 밀려와 강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나뭇가지처럼, 세월에 밀리고 청춘에서 제외되고 현실의 강에서 흘러 하류로, 더 넓은 바다로 간다. 강가에서 본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소외된 신세라고나 할까?

 

초등학교시절 받아쓰기를 하던 때가 있었다. 띄어쓰기는 받아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철자법을 잘 알아야하는 것이 기본이라면 띄어쓰기는 그것의 마무리다.

 

귀가 밝은 어릴 때는 공부는 못해도 받아쓰기는 틀리지는 않았다. 쉬웠다, 거의 모든 학생이 틀리지 않는다. 읽고 베끼고 소리 내어 읽고, 속으로 읽고 듣고 또 듣고 베끼고, 학교 성적은 저조했다고 해도 이렇게 쉬운 걸 틀리는 애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낭독이나 낭송. 베끼기는 모두 좋은 공부다. 시를 이해하고, 그 글을 이해했는지 자신이 스스로 깨우쳐 알 수 있다. 생활의 박자도, 공간도, 여유도, 그렇게 말을 배우듯 자연스럽게 배운다.

 

한국의 방송인들은 왜 말- 말, 밤- 밤 같은 장단음을 틀릴까? 한국어 원어민들 중에서 공부를 잘한 사람을 시험 봐서 뽑았을 텐데, 잦은 실수를 보고 있자면 영어를 잘하게 하기 위해 혀를 수술시키는 부모들을 생각나게 한다.

 

지구가 망할 때 쯤 되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뒤 따라 온다. 장님이 인도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거기가 4대강이든, 더 작은 강이든 눈 뜬 사람은 왜 거기로 같이 들어가는 걸까?

 

한국이 땅덩어리는 작아도 사투리가 있다. 옛날에는 교통이 불편해서 왕래가 드물었던 제주도는 더욱 심하다. 자연스런 현상이긴 해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이다. 영어를 쓰는 나라라고 사투리가 없을리 없다.

 

뉴-펀드랜드주에서 밴쿠버로 이주해온 사람들의 영어는 정말 알아듣기 힘들다. 자신들의 말이 알아듣기 힘들 거라고 그들도 안다. 유럽에서 온 이민자가 영어를 못해 영어 못하는 나를 보고 미안해한다. 우리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금방 구별하듯 밴쿠버의 억양과 미국 남부의 억양은 분명 다르다. 귀 밝은 영어권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일제강점기에 쓰던 일본어 찌꺼기가 일본어를 제2 제3 외국어로 배울 때 도움이 된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 순수성이 가지는 단점도 있지만 그 단점을 싫어해서 순수성을 버리는 것은 빈대를 잡기위해 초가삼간에 불 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다. 나의 서툰 영어를 듣고 문장이나 발음이 틀렸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가 서툴러서 미안하다고 하면 "나의 한국어보다는 네 영어가 낫다"고 위로한다. 위로받는 사람의 기분이 묘하다.

 

사실 기분 나쁘다. 그걸 위로라고 하다니! 그렇다면 한국말이 서툰 원어민 한국 사람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원어민에게는 이렇게 쉬운 한국말의 장단음을 구별 못하는 방송인이 보여주는 방송 현실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그들의 한국어실력이 영어실력보다 낫다고 위안해야 할까? 다른 실력에 비해 장단음의 실수는 사소한 거라고 생각하는 현실이 한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슬프게 보여준다.

 

오석중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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