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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오석중의 살아가는 이야기] 치매와 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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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4-23 12:56 조회3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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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를 냉장고 안에 넣어두고 찾는다든지 자동차 열쇠를 트렁크에 두고 닫는다든지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어, 왜 열었지?" 비단 나이를 먹어서만도 아니다. 외출을 하면 부엌에 불을 다 껐는지, 문은 잘 잠갔는지, 차고 문은 잘 내렸는지, 외출하고 있는 동안 내내 고민을 한다. '업은 아이 삼년 찾는다'고 담배를 피울 때는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손에 들고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바꾸어 가면서 주머니를 뒤지던 기억이 난다.

 

이런 과거에 대한 재미있는 추억도 복습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복습의 방법에는 같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기분과 상관없이 꾸준히 이야기 하는 방법과 그 좋은 추억을 주기적으로 생각해보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듣는 사람의 배려가 필요하지만 자신이 자신의 좋은 추억을 혼자서 반추하는 것은 남을 방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누군가 2살 때 기억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사용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때로서는 드믄 졸업 앨범이 있어서 자주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을 보고 저절로 암기하는 일종의 그런 연습을 했지만 졸업 앨범이 무슨 연유인가 없어진 후로는 생각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가 이름을 잊어버리고 얼굴도 잊어버렸다. 네트워크가 발달한 요즘 시대에는 매체의 수도 많고 인터넷에서 심심풀이 삼아 웹 썰핑(검색)을 한다든지 친구가 알려주기도 해서 초등학교 고등학교 동창회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메일도 받고 전화도 받는다. "대식이가 너하고 짝꿍이었다더라." "그래." 생각이 얼른 나지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이름을 되 뇌이다가 급기야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중아, 너의 집에 가서 빈대떡도 얻어먹었고, 너 여동생이 많았잖아. 다들 잘 사니?" 금방이라도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 갈 듯 하나둘 추억이 되돌아온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응, 그래그래." 하면서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어떤 추억은 얼른 명쾌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미안하기도 하고 멋쩍기도 하다. "응응, 그래." 아는 척 한다. 벌써 치매인가?

 

나의 가게에 매일 오시는 랄프 할아버지는 한국전 참전용사답게 한 번도 의자에 앉으시는 법이 없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시간 씩 매일 걸으신다. 걷기는 치매예방에도 좋은 운동이라고 한다. 이바 할머니는 추억담을 이야기 하는 걸 매우 좋아하신다. 한 이야기 또 하시고 또 하시고 그러면 랄프 할아버지는 "스토리 넘버 476" 하면서 놀리신다. 같은 이야기를 계속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살려면 들은 말을 얼른 잊어버리는 방법을 터득하라는 어느 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모국의 소식에 목마르던 시절, '88 서울 올림픽'도 거의 삼십년이나 흘렀다. 그 때 녹화한 올림픽 개회식이나 하이라이트 등은 지금 봐도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삼십년 전의 광고도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88 올림픽 때와 똑 같다. 녹화 테이프가 변할 리도 없다. 그런데도 무언가 다르다. 비단 올림픽만 그런 게 아니다. 50년대와 60년대에 상영했던 영화를 비교적 구하기 쉬운 요즘, 그 영화를 다시 보는 것도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

 

내가 중학교 때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 토니 커티스, 마리린 몬로, 잭 레몬>라는 영화를 청량리에 있는 시대 극장에서 첫날 세 번 보고 그 다음 날 또 가서 두 번을 더 봤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테이프도 샀고 지금 봐도 재미있다. 그러나 뭔가 옛날 같지 않고 다르다. '다르다'라는 말은 같지 않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그 영화 때문도 아니고 내가 녹화한 올림픽 영상 때문도 아니다. 내 마음이 변한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나의 몸 만 변하는 게 아니라 나의 마음도 나의 기억도 다 변한다. 그 때 미치도록 좋아했던 그 사람이 지금은 별로인 이유는 나의 변심 때문이다.

 

내가 반했던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변심했다 하더라도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는다. 베스트셀러처럼 순위가 바뀌고 검색어 따라 인기가 바뀌는 것처럼 나의 마음도 매일매일 다른 사람의 순위를 바꾸고 좋아하는 노래도 좋아하는 음식의 순위도 달라진다. "변덕이 죽 끓듯 하다."더니, 말하자면 변심이다. 심순애 탓 할 일이 아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나의 순위가 떨어진 걸 알면 나의 변심을 섭섭해 할 것이 분명하다.

 

치매는 단지 기억 창고에 있는 저장물이 없어지는 증상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 기억을 꺼내서 쓰는 데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드 디스크에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꺼낼 수 없다면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 사용할 수 없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창고에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열쇠를 잃어버렸다거나 다른 사람이 비밀 번호를 가지고 있다면 내 물건이라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으니 그 재물은 나의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재물을 모으지만 자신의 힘으로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하긴 조선 말기에 양반이 테니스를 치는 서양 사람을 보면서 '저 힘든 일을 하인을 시켜서 하지.'하며 혀를 차더라고 했다더니 자신의 재물도 나의 의도가 아닌 다른 사람 마음대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정신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좋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 아껴주고 싶은 많은 마음을 내가 직접 남에게 항상 쓰고 산다면 어떨까? 지식과 재물을 남을 위해서 사용하고 누구에게 줄까 항상 생각하며 즐거운 두뇌 운동을 한다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OSJ.gif 
오석중 (시인/수필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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