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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보애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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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6-27 12:05 조회3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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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보애언니.jpg

 

우린 언제쯤 '사랑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보애 언니는 자꾸 내 발바닥을 때렸다. 발바닥은 때려도 상처가 잘 나지 않기 때문이란건 한참 후에 알았다.

 

차가운 가위가 이마를 스칠 때마다 나는 얼어버렸다. 보애 언니는 아무리 싫다고 해도 내 앞 머리를 잘랐다. 할아버지가 설립한 고아원에 갓난 아이 때 들어온 보애 언니를 아빠는 특별하게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되면 고아원을 떠나야 하는데, 갈 곳을 찾지 못한 언니가 우리와 함께 살던 시절이 있었다.

 

언니는 엄마 아빠가 출근한 사이 어린 동생과 나를 봐주고 살림도 도와주었다. 우리 가족에게 언니는 분명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우리를 매번 무섭게 혼냈다. 동생은 덕분에 기저귀도 빨리 뗐다. 우리는 저항할 수 없어 그녀의 강한 손에 속수무책 눌려 있곤 했다.

 

엄마는 친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자란 언니가 늘 안쓰럽다 말했다. 그녀와 다른 우리가 얼마나 감사한 환경인지 상기시켜주었다.

 

아침이면 엄마 아빠는 언니 말을 잘 듣고 있으라며 출근해 저녁이 돼야 돌아왔다.

 

어느 날 해질 무렵 마을어귀에 쭈그려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나를 친척 어른이 발견했다. 왜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냐는 물음에 보애 언니가 무서워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툭 말해버린 것으로 삼 년이 넘는 언니의 소행이 들어났다.

 

부모와 사는 우리가 질투 나서 그랬다는 언니를 붙들고 엄마는 언니랑 같이 울었다.

 

분명 ‘안쓰러운’ 그녀이기에, 그녀를 미워하는 일은 죄책감을 주었다. 우리가 언니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몇 년 후 결혼해 아기를 낳았다며 찾아온걸 보면 우리 가족과 언니의 인연이 끊긴 것 같지는 않았다.

 

어른이 되어도 나는 종종 다른 ‘보애 언니’를 만난다. 상황이나 감정으로 의지할 존재가 필요한 이들인데, 마음을 내어줘 안으려 하면 그들의 아픈 상처는 무기가 되어 휘둘러졌다.

 

마치 보애 언니의 상처로 내 발바닥이 아프고, 앞머리가 잘려 나가야 했듯이. ‘조각난 세상을 하나로 묶는 연대의 끈’이라는 것은 작은 마음을 내어주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덜 힘든 사람이 참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 견뎌보기도 했다. 결국 나는 그들로부터 도망쳤고, 도망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사랑 할 수 없으며 사랑하는 척했던 나를 비난했다.

 

관념이 아니라 실상의 연대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이고, 동경하는 삶이다. 그러나 실체는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나는 늘 ‘보애 언니’를 넘어서지 못했다. 여전히 내 존재를 필요로 하나 내게 서슴없이 상처 주는 이들의 손을 선뜻 잡기가 두렵다.

 

어린 시절에서 온전히 해방되지 못한 나는 그들을 서늘하게 외면하기를 애썼다. 무엇보다 ‘보애 언니’와의 기억은 때론 타인의 아픔에 관한 공감능력을 상실케 했다. 하지만 사랑하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토록 배운, 예수가 자기를 못 밖은 자들까지도 사랑한 그 역설의 사랑이 불편하지만 떨쳐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삶은 사랑을 배우는 과정일게다, 어떤 경우에든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 할 수 있을 때까지. 신비로운 십자가 아래 서면 묻는다. 나는 사랑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보애 언니’를 안을 수 있을까. 지금 외면중인 또 한 명의 ‘보애 언니’가 신경 쓰인다.

 

 

김한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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