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우아한 비행] 사람이 온다는 건. > 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학

문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사람이 온다는 건.

페이지 정보

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9-26 12:03 조회432회 댓글0건

본문

IMG_2590.JPG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사람의 삶과 대면하는 것을 의미

 

가하 할머니가 개학 후에도 학교에 오지 못하고 계신다. 연세도 있으신데다가 몇 년째 가하와 학교를 함께 오가는 일은 고되셨을 것이다.

 

수술을 받기만 하면 걷는 일이 편해진다는 말에 여름방학 때 무릎 수술을 받으셨다. 그런데 수술 후 통증이 너무 심해 여전히 밖에 나오지 못하신다. 처음 며칠 가하는 아빠랑 학교에 오고 갔는데, 이제는 아침에 아빠가 데려다 주면 오후엔 혼자 집에 간다. 그렇게 가하도 크고 있다.

 

수업이 끝난 후 할머니가 좋아하신다는 복숭아 여덟 알과 가하가 좋아하는 닭 강정을 사서 할머니네 놀러 갔다. 언덕이 높아 녀석이 헥헥 거린다. 그래도 닭 강정 봉지는 꼭 쥐고 지름길이라며 계단 많은 길을 선택한다.

 

한달 반 만에 뵌 할머니 얼굴은 핼쑥했다. 수술한 무릎을 보여주시는데, 빨갛게 퉁퉁 부어있다. 통증이 심해 눈을 질끈 감고 말씀 하신다. 배가 고픈데도 할머니가 차려준 호박죽이 목에 메여 넘어가지가 않았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된 할머니가 장사를 하며 자식들 공부도 많이 시켰고 모두 잘 사신다.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세월 따라 삶에 순응하며 사셨다. 인품이 좋으신 할머니는 가여운 사람도 많이 도왔고, 그 덕에 자녀들도 착하고 우애가 좋다고 믿으신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엄마 없는 가하는 무릎 통증보다도 더 시끈 시끈한 손자이다.

 

할머니는 내게 이것 저것 물으시더니 손녀 보듯 애정 어린 눈빛이었다. 부모 멀리 떨어져 타국 생활 하는 처지가, 좁은 집을 비싸게 주고 사는 형편이, 결혼도 안하고 외롭게 사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내 걱정 한 움큼 해주셨다.

 

종종 밥을 나눠 먹게 놀러 오라 하신다. 내가 챙겨드리고 싶었는데, 할머니께 마음을 더 받았다. 돌아오는 길, 술떡과 두유 두팩을 얻어왔다. 우리 서로의 삶에 조금 더 깊게 다가갔다.

 

추석인데 어찌 지내냐며 할머니께서 연락을 주셨다. 혼자 있을 내가 마음에 쓰인다면서 송편이나 먹으러 오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현관문도 열어 두고 나를 기다리셨다. 두 번째라고 꽤나 친근한 마음이었다. 상에는 추석 음식이 가득 차려 있었다. 아픈 무릎으로 나를 기다리시며 준비 하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마음이 그랬다.

 

할머니는 흥이 많았다. “꿈을 안고 왔단다/내가 왔단다/슬픔도 괴로움도/모두모두 비켜라/안 되는 일 없단다/노력하면은/쨍 하고 해뜰날/돌아온단다~” 저녁을 먹고 이야기하다,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세월에 담긴 당신의 사연을 풀어놓다 어느새 노래로 이어지는 것이 진정 노래꾼이었다. 할머니의 구성진 노래와 그 깊은 인생에 빠져 들었다. 한껏 흥이 올라 노래 가락에 어깨춤도 덩실덩실 추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박수 치며 장단 맞추기도, 아는 노래가 있으면 몇 소절 따라 부르기도 했다. 다행이다. 내 안에 할머니를 이해 할 수 있는 같은 정서가 남아 있어서. 가을이 오는 밤을 우리는 함께 맞았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 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만남에 관한 한 시인의 시구를 떠올렸다. 작은 사람으로 인해 한 노모의 일생과 조우한 것 아닌가.

 

그 삶의 깊이를 다 받아 적을 순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성을 다하는 마음일 것이다. 서로 무관했던 우리가 연결 되었고, 그래서 서로가 보고 싶고, 서로를 위해 마음 쓸 때의 힘은 크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 둘이 만나, 여든의 노모와 내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마음이 오는 것이다.

 

김 한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문학 목록

Total 569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