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창조
켄트 플래너리
조이스 마커스 지음
하윤숙 옮김, 미지북스
1004쪽, 3만4200원

『불평등의 창조』를 읽은 독자는 지인들에게 이 책을 한마디로 뭐라고 소개할까. “갑을(甲乙) 관계의 탄생에 대한 책이다” “루소와 대화를 나누는 21세기판 『인간불평등기원론』이다”라고 할 것 같다.

『불평등의 창조』의 글거리 재료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수메르에서 사모아까지’, ‘1만5000년 전에서 20세기 초’까지의 고고학과 민족지 자료를 망라했다. 한글판은 1004페이지, 영문판은 648페이지 분량이다. ‘너 그거 아니’하며 뻐길만한 신선한 사례가 많다.

재료를 요리한 방법은 인류고고학이다. 켄트 플레너리와 조이스 마커스 미시건대 교수는 사회인류학의 성과도 인용하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없는 것들은 배제했다. 두 교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류고고학자들이다. 두 학자가 평생 작업한 성과물이다.

이런 재료와 레시피로 저자들이 만든 이야기는 맛있다. 대략 이런 스토리라인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던 인류의 조상은 평등하게 살았다. 나이와 성별에 따른 불평등은 있었지만 적어도 또래 남자들끼리는 평등했다. 아직 씨족이 형성되기 전이었다. 나눔이 강조되는 사회였다. 아니 ‘나눔이 강요됐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했다. 기원전 2500년 정도가 되면,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거의 모든 불평등 유형이 지구 어딘가에 나타났다.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겼을까. 사람의 유전자가 그 짧은 기간에 바뀐 것은 물론 아니다. 인구 증가나 환경 변화, 식량 문제도 요인의 후보가 될 수 있다. 저자들은 이들 물질적인 변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대신 ‘사회적 논리(social logic)’의 변화를 내세운다. 모든 사회마다 고유의 ‘사회적 논리’가 있는데, ‘사회 논리’가 바뀌면 불평등의 체제도 바뀐다.

‘사회적 논리’의 변화를 이끈 요인 중에는 ‘신성함(the sacred)’이 있다. 하늘에 있는 초자연적 존재들과 조상,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자손들의 관계에 ‘신성함’이라는 관념이 끼어들자, ‘일부’ 자손들은 세습 엘리트가 됐다. 세습 엘리트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저자들이 ‘국가’라는 표현 대신 선호하는 ‘왕국(kingdom)’이 발전한다.

저자들이 선택한 독자층은 ‘선사시대 조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일반 독자’다. 하지만 모든 인문사회 학문 분과의 학자들에게 영감을 제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최근 일련의 갑을 관계 사건이 우리를 평등의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은 때를 잘 만났다. 

현대판 고전으로 평가 받는 『총, 균, 쇠』의 저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 책은 인류의 장기(長期) 정치적 진화에 대한 표준적인 설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저자들은 불평등은 필연도 자연스러운 현상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불평등은 ‘사회적 논리’가 바뀐 결과물이니 ‘사회적 논리’를 바꾸면 평등을 복원할 수 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