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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책 속으로] 요리를 숭배하다, 영혼이 허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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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04 12:39 조회3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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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먹는 방송)’이나 ‘쿡방(요리하는 방송)’은 최근 국내 TV프로그램의 주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식도락과 요리에 대한 열망, 그리고 ‘셰프’로 불리는 요리사에 대한 선망은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지적이다. [방송화면 캡처·중앙포토]

 

비싸고 진귀한 음식 찾는 푸디즘
식이 장애가 아닌 문화적 장애
건강식·가정식은 허상이 만든 단어
먹는 것 중요하지만 삶의 작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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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쇼쇼쇼
스티브 폴 지음, 정서진 옮김
도서출판 따비
288쪽, 1만5000원


바야흐로 ‘먹방’ 전성시대다. 식도락과 요리는 우리 삶의 중심부에 깊숙이 진입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고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영국 문화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지은이는 “요리는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열망을 채워주면서 형이상학적인 숭배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한다. 20대에 술, 30대에 약에 빠졌던 서구인들이 40대 이후 음식의 쾌락에 빠져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모두가 요리에 빠져 있으니 요리사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유명 요리사는 이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 반열에 오르고 있다. 더 이상 정치인도 종교인도 믿지 않는 현대인은 이제 요리사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기를 기대할 정도다.

 이에 따라 음식이나 요리로 유명해지고 싶거나, 명성을 유지하려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거머쥐었고, ‘대부’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걸작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도 식당을 차렸을 정도다. 록스타 본 조비도 자신의 음식점을 열었다. 브래드 피트, 벤 애플랙 같은 미남배우와의 염문으로 명성을 더했던 할리우드 스타 귀네스 팰트로도 요리책을 내면서 새롭게 화제를 모았다. ?나의 부엌 테이블 노트?(2011), ?아버지의 딸: 가족 친지를 즐겁게 하는 맛있고 쉬운 요리법?(2011), ?모두 좋아: 당신을 멋져 보이고 기분 좋게 할 맛있고 쉬운 요리법?(2013)이라는 이름만 봐도 의도가 엿보인다.

 지은이는 이런 현상을 “음식에 대한 강박증 또는 광기”라고 비판한다. 초기 교회가 탐식을 죄로 정의한 것이 문제이듯, 음식으로 영적인 갈증을 채우는 것도 오류라고 지적한다. 잠시 최근의 음식 열기의 현장을 보자. 그 최상층에는 깔끔한 식당에서, 세련된 테이블 앞에 앉아, 희귀 재료를 고난도 기법으로 조리한 이색적인 요리를, 멋진 식기에 담아 몇 시간에 걸쳐 정중한 접대를 받으며 즐기는 코스가 자리 잡고 있다. 그 현장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 음식을 내놓는 요리사는 창작자로서 존경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음식에서 중요한 것은 일상성과 안정성이며 이처럼 새로운 고급요리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비싼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계층 사이에 퍼져있는 저속한 열광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지은이는 음식 열풍이 이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고 지적한다. 거기에는 음식이 허전한 영혼을 채워줄 것이라는 시대의 갈망이 담겨 있다. 음식은 영성이자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달리 말하면, 돼지고기를 씹는 일이 우주의 진리와 합일을 이루는 신성한 행동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음식 안내서에 ‘바이블’이라는 이름을 유행처럼 붙이고 있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게 됐다. 음식이 영적이라면 현대의 유명 셰프들은 성직자라는 말인가. 음식재료를 제공하는 대지와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영적인 통역자일 수도 있다. 지은이는 하지만 이렇게 도도한 ‘음식 열풍’이 실제와는 동떨어진 허상이라고 쓴소리를 한다. 음식은 음식일 뿐인데 그 의미가 과대 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음식이 숭배 대상이 되다 보니 심지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마저 생겼다. 영국 음식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드라이버가 대표적이다. 그는 먹고 마시는 음식의 단순하거나 복잡한 조합을 통해 식욕과 기분뿐 아니라 지성까지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반면 지은이는 스테이크는 심포니와 다르며, 푸아그라는 푸가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주방에서 음식을 가열해 접시에 배열하는 요리사가 음을 배열해 연주하는 재즈음악가 찰리 파커와 동일한 예술성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음식은 음식대로 가치가 있는데 이를 지나치게 불리는 경향은 객관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지적이다. 물론 일부에선 이런 비판을 19세기 인상파들에 대한 공격에 비유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요리도 훌륭한 표현 수단임을 인정한다. 헌데 제 아무리 정교한 성을 쌓아도 모래성은 모래성일 뿐이듯이, 음식도 음식 자체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음식 준비와 소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을 푸디즘, 그 추종자를 푸디스트라고 각각 부른다. 지은이는 이러한 푸디즘을 “식이 장애는 아니고 문화적 장애”라고 지적한다. 심리적으로는 음식에 대한 다양한 강박증이 미식 열풍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음식과 약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강식, 자연적일 수 없는 자연주의 음식, 가정과는 관련 없는 가정식 요리의 범람 등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집에서 요리는커녕 밥상 차릴 시간도 없는 사람을 ‘인스턴트나 먹는 혐오스럽고 무지한 야만인’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일침을 놓는다. 음식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요리와 식도락 중심주의에 빠졌다는 것이다.

 물론 먹는 것은 삶의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다. 인생의 즐거움인 것도 사실이다. 잘 먹고, 즐기면서 먹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삶에서 먹는 것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전부는 아님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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