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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애서가 (愛書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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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5-02 12:16 조회4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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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육 개월 쯤에 작문 공동체 ‘삼다’에 발을 내디딘 것은 글쓰기를 배우기 위함도 있었지만 먼저 좋은 책을 읽고 싶어서였다.

 

일주일에 한 권, 일 년에 52권의 책을 읽는다는 글 선생의 제안이 매력적이었다. 선생이 엄선했을 신뢰할만한 지정 도서가 있을 테고, 함께 읽을 벗과 기한 내 읽어야 하는 의무감도 있으니 꼭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어린 시절 말 수가 적고 쭈그려 앉아 책 읽기를 좋아하던 나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무리해서라도 문학 전집을 사곤 했다. 학년이 올라가고, 한국 입시제도에선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다 떠난 캐나다에선 영어부터 배워야 하니 한글 책은 읽으면 안 된다 생각했다. 영어책은 술술 읽히지가 않아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책과 멀어졌었다.

 

‘삼다’를 통해 시동이 걸려 모국어로 책 읽기에 푹 빠졌다. 지정 도서뿐만 아니라 글벗들이 소개하는 책 목록을 듣고 있자면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세상엔 읽고 싶은 좋은 책은 많은데 읽는 속도가 그 욕구를 따라가지 못해 속상했다.

 

이제 글 수업은 끝났어도 틈틈이 적어놓은 책 목록을 직접 확인하러 서점에 꼭 들리는 일은 즐거운 일상이다. 서점에 쏟아져 나온 책들을 들추고 있노라면 내 게으름과 무식이 발가벗는 것 같지만 오랜 시간 책을 읽지 않아 생긴 지적 결핍을 이렇게라도 차곡차곡 채워야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독서는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함만이 아니라 기분이 상하거나 우울 할 때 위로를 받는 방법이다.

 

어떤 애서가의 말처럼 책이 온몸을 통과하면 고통을 해석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휘몰아치는 감정과 갈등하는 내면은 글을 읽으며 안정을 되찾았다. 반복되는 일상의 고단함과 관계의 부대낌으로 경직된 마음은 책을 통해 말랑말랑 해졌고, 예상치 못한 삶의 난관 앞에선 책은 깊은 사유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황홀한 문장은 그 앞에 서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지가 않아 한참을 머물게 하는 힘이 있다. 밑줄을 긋고 빼곡히 노트에 베껴 적기도 하며, 그은 문장들을 따라 써보았다. 그런 문장은 모여 '우아한 비행‘이 되었다.

 

시인 장석주는 책 읽기는 '자기만의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도 자기의 우주 바깥으로 나가 살 수 없고, 우리는 오직 자기가 만든 우주 안에서만 숨 쉬고 생각하며 살 수 있다고 했다.

 

책을 읽는 다는 건 그 우주의 경계를 더 넓게 밀어 가며 확장하는 일이며, 자기의 우주가 넓어지면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지니 자유로워지는 일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창조주도 세상을 향한 그의 사랑을 책으로 기록 하고 있지 않은가. 

 

옛 애서가들은 1년에 한두 차례 볕 좋고 바람 시원한 날 방안의 책을 모두 꺼내 바람 잘 드는 마루나 그늘에 펼쳐놓고 뽀송뽀송하게 말리는 일을 했다고 한다.

 

‘쇄서’라 불렸던 이 연중행사를 언젠가 날을 정해 해보고 싶다. 그 동안 모은 애정 하는 책들을 펼쳐 볕과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다. 한 장 한 장 다시 펼쳐보며 모국어로 된 책이 준 감동을 새삼스레 기억하는 책 놀이가 될 것이다. 이제 책은 그냥 책이 아니고 인생의 여정을 함께 걷는 벗이 되었으니까.

 

 

김한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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