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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책 속으로] 책 읽을 때 색연필 준비해야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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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8-01 05:27 조회4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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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56쪽, 1만4000원


이 책을 펴기 전에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색연필을 준비하면 좋겠다. 왜 필요한지는 38쪽 중간 부분을 읽으면 나오는데 무더위를 이기는 놀이라 여길 수도 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80)의 독서론(讀書論)인 『읽는 인간』은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 꽤 많이 나오는 인생독본이다. 오에의 말을 빌리자면 “그 책에서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 혹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에 각각 빨강과 파랑, 두 종류의 색연필로 선을 긋거나, 약간 긴 구절이라면 선으로 상자를 만드는 것”이 그의 치열한 읽기 훈련의 한 방법이다. 재독(再讀)을 전신운동에 비유하는 오에에게 색(色) 표시는 일종의 근육 부위를 구분하는 표시였던 셈이다.

 오에는 아홉 살 때 ‘내 인생의 책’이라 부를 만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만난 뒤부터 70여 년 삶의 모든 순간에 책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는 한 구절에 꽂힌 이래 그는 책이 또 다른 책을 불러들이는 거대한 책의 숲을 거니는 순례자로 살아왔다. 그가 영혼의 떨림으로 사랑한 에드워드 W 사이드나 시몬 베유 에 대한 감정은 “나는 본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인간이 아니다”(57쪽)라고 느끼는 자발적 망명자로서의 공감이었다. “다른 사람이 괴로움에 빠져 있을 때,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살아가는 것을 결단코 참지 못했던”(56쪽) 태도를 오에는 소설가로서 견지했다.

 색연필 과정을 넘어선 독자에게는 사전을 권하고 싶다. 책 전반에 펼쳐지는 단어에 관한 치열한 탐구 과정은 그 문맥에 들어맞는 가장 적확하고 아름다운 언어 하나를 찾아내려는 오에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그는 우정(友情)이라는 단어를 연대감과 따뜻한 감정으로서의 우정(優情)으로 번역하고 싶다고 쓴다. 언제까지고 새로운 언어의 힘에 대한 그의 강한 믿음은 종교를 뛰어넘는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누구나 오에처럼 읽을 수는 없지만, ‘내 인생의 책은 무엇이지’ 돌아보게 만드는 힘은 세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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