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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응급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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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9-12 12:31 조회5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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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는 공간의 이야기 들

 

내가 한동안 휘청거리며 방황하던 것, 고민하는 문제들, 작은 엇갈림에 서운한 마음은 사실 별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며칠 전 밤, 양치질 하다 정신을 잃어 욕실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 통증에 겨우 깨어났다. 머리는 멍했고, 속은 메스꺼웠다. 갈비뼈는 뒤척일 때마다 뻐근했다.

 

머리를 부딪힌 데다가 구토 증상도 있었으니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의 조언에 혹시 모를 가능성을 의심하며 뒤늦게 응급실을 찾았다.

 

내 상황을 듣던 의사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CT와 X Ray를 찍고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해야 한다는 소견을 냈다. 응급실 A4번 침대에 배정받아 누우니 기분이 이상했다. 바퀴 달린 침대에 누운 채 여기저기를 끌려 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손등 여러 군데를 찔러 피 검사를 했고, 내게 연결된 수액은 내내 나를 따라 다녔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몇몇 생각을 했다. 나의 방황, 이런저런 고민, 계획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제일 먼저 밴쿠버에 계신 부모님이 떠올랐고, 학교 일도 잠시 스쳐갔다. 병원비가 무료인 질 낮은 캐나다로 가야 하나 보험은 어느 정도 적용될까 궁금했다.

 

보호자로 따라와 준 친구에게 ‘머리를 다쳤으면 어쩌지’라며 실없는 농담도 했다가, 문득 아침에 읽기 시작한 소설 ‘소년이 온다’의 정대가 생각났다. 육신에서 분리돼 혼으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던 소년 정대. 소년의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다.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제 얼굴은 습자지같이 얇고 투명했다. 소년은 눈을 감은 제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다.

 

나 역시 응급실에서 빽빽이 환자들 사이에 누워있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처음으로 내 삶을 타자화해서 보게 된 순간이었다. 이내 ‘내가 삶을 너무 사랑했나 보다’ 짧은 자책도 했다. ‘나 다시 불행하고 싶지 않은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응급실 침대마다 달린 모니터의 규칙적인 기계음 소리, 가족들의 걱정스런 눈빛에 바스러질듯한 노모의 웅크러든 몸, 119 구급차에 실려온 남자의 숨가쁜 몸짓, 감정없는 간호사의 반복적인 질문, 별안간 다른 세상에 떨어졌다. 응급실 공기는 절박했고 누군가의 고통이 배어 있었으며, 결국 쓸쓸했다.
 

옆 침대에서 나는 대화 소리가 내 쪽으로 넘어왔다. 죽을 때가 되었으니 이제는 용서해야 한다는 아들의 말에 노모는 말이 없다. 죽을 날을 앞두었다고 어떻게 모든 게 다 용서되고 이해될 수 있을까.

 

죽어가는 몸도 서러운데 마음마저 죽어야 한다고 떠미는 것 같았다. 나란히 누어서 그런지 노모의 마음이 더 잘 전해졌다. 보호자들이 식사하러 가자 홀로 된 노모와 응급실에 함께 남았다.

 

당신이 추우니 이불을 덮어달라고 작지만 카랑진 목소리로 노모는 간호사에게 요구했다. 아직 노모의 미움은 싱싱해 보였다. 우리의 몸은 늙고 죽어가도 마음은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듯하다. 그 사실에 우리는 때론 당황스럽고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늙어가는 모든 삶이, 이 순간 시큰거린다.

 

‘죽음을 회피하기만 하면 삶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아끼지 못한다’며 간혹 죽음을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인생이 죽음을 향해 내딛는 것이라면 오늘을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라,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게 조금 더.’ 라고 조언했다. 그의 말대로 죽음을 생각하는 지금, 나는 내 삶을 가장 아까워하고 있다.
 

결과를 기다리다 졸던 나와 친구를 의사가 깨웠다. 내가 한동안 휘청거리듯 방황한 것, 고민하는 이런저런 문제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과 다시 마주했다.

 

방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고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 또한 내 힘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다만 이 치열한 일상은 내 생(生)이 싱싱하다는 증거라는 것을 응급실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미련 없이 낡아가는 내 젊음을 오롯이 살아가기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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