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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기고] 검은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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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9-19 13:15 조회4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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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명이 뿌옇게 밝아지고 있는 이른 아침이다.  허름한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플라스틱 콘테이너 한 개씩을 쇼핑 백에 넣어서 나간다. 주말이라 거리는 한적하여 인기척은 없는데 간혹 자동차가 지나간다. 늦여름의 시원한 아침 공기는 사뿐이 살 갓을 스쳐가면서 상쾌함을 남기고 간다. 검은 딸기를 따려 정아(집사람의 이름)와 나가는 길이다.

제 멋대로 펼쳐져 자라는 야생 검은 딸기 밭을 찾아간다. 새까만 딸기가 주렁주렁 보인다. 가시를 피하려고 조심조심 몸을 움직여 딸기를 딴다. 한 두 개를 입에 넣어 보면서 시식을 한다. 새콤달콤한 검은 딸기 맞이 미각을 자극한다. 먼 옛날의 산딸기 맛을 회상하며 마음은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간다.

햇볕이 따갑게 쬐는 한 여름의 오후라 무척이나 후덥지근하다만 아무도 불평을 하지를 않고 소를 몰고 뒷동산으로 가는 오솔길을 걷고 있다. 각각 소 뒤에 따라가는 개구쟁이 동무들의 마음은 다 한 곳으로 가고 있다. 가파른 계곡에 몇 그루의 산딸기나무에 새빨갛게 익어있을 산딸기들이다. 드디어 산기슭에 도착하였고, 잡고 가던 소 고삐를 소의 목에 채우고 소를 산으로 쫓고 나자마자 그 가파른 계곡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여러 그루의 산딸기 나무들에 산딸기가 여기 저기 빨갛게 익어있다. 산딸기가시가 손등을 찌르는 것도 느끼지를 않고 손을 뻗쳐 가까스로 한두 개를 따서 입에 넣을 때의 그 달콤한 맞은 한 여름의 환희를 일깨워 준다. 마지막에는 채 익지도 않은 새큼한 것까지 따 먹으면서 못다 채운 욕구를 달랜다. 입에 달콤한 군것질이나 후식이라고는 없었던 당시의 시골에서는 산딸기를 따 먹는 것은 후덥지근한 한 여름의 희열이었다. 소 치려 다니든 여러 산골의 이곳 저곳, 어느 밭두렁에 산딸기 나무가 있다는 것까지 마음에 새기고 있으면서 계절을 기다렸다.
 
아야! 하고 검은 딸기 가시에 손목을 찔려 비명을 지르면서 이국 땅에서 칠십 노구를 이끌고 검은 딸기를 따고 있는 곳으로 마음이 돌아온다. 검은 딸기에는 장미의 가시처럼 많은 가시가 있다. 해충이나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딸기나무를 보면서 자연의 섭리에 숙연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다. 자기의 열매를 보호하려고 더 진화를 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저런 공상들을 그려본다. “공짜점심은 없다”고 했던가?  고기를 낚으려면 지렁이를 만져야 된다더니, 이렇게 지천으로 많은 야생 검은 딸기를 따는 데는 가시에 찔리는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구나. 억센 가시에 찔리고 갈퀴면서 즐비하게 매달려 있는 검은 딸기에 현혹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따다 보니 벌써 갖고 간 콘테이너가 새까만 검은 딸기로 채워졌다.
 
이제 몇 푼 안 주고도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검은 딸기를 그것도 가시에 찔려가면서, 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궁색스럽다 할까 봐 두려워하면서 따고 있을까?  옛날 산딸기를 따던 그 재미를 이 검은 딸기를 따면서 다시 느껴보는 것인 것 같다. 그 즐거웠던 추억이 세월 따라 스러지지 않게 내년에도 나가야지 하고 마음 다짐한다. 

권오율 / 사이몬 프레이저 대학교 경영대 겸임교수, 아·태경영연구소 교수연구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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