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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 정원] 션(SEAN)의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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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4-11 11:42 조회3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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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셀몬 콤보야?”

 

션(SEAN)은 우리 집 단골 손님이다. 보통 일주일에 두세 번 혹은 격일제로 올 때도 있다. 

 

가끔은 친구들과 또는 가족들과 오지만 주로 혼자 올 때가 많다. 

 

그는 연어를 무척 좋아한다. 그의 메뉴에는 항상 연어가 들어가 있다. 

 

올해 세컨더리 졸업반으로 황소 같이 크고 순한 눈을 가졌다. 

 

토종 캐네디언으로 양 볼은 항상 홍조를 띈 선한 인상이다. 그래서 웨이츄레스 제인은 그를 셀몬 션 이라고 부른다. 

 

제인은 중3때 한국에서 부모님을 따라 이민 와 우리 집에서 일년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고 있다. 아담한 체구에 차분한 성격이며 동양적인 귀여운 인상으로 션과는 같은 학교 동급생이다.

 

일식 집은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온 후 두 번째 차린 비지니스다. 처음 정착한 곳은 코퀴틀람이었다. 큰 애는 파인트리 세컨더리에, 작은 아이는 글렌 엘리먼터리에 배정을 받았다. 

 

빨간 벽돌에 넝쿨이 어우러진 고풍스런 학교를 연상했으나, 파인트리는 공사 중이었고 글렌은 임시 창고 같은 건물이라 아이들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몇 달 후 큰 아이가 상을 받는다고 하여 파인트리 세컨더리 강당에 갔다. 

 

강당에 모인 수백 명의 학생들은 검정 머리 일색이었다. 중국어와 한국어, 그리고 필리핀어가 난무했다. 마치 캐네디언들이 이민 온 것 같았다. 

 

아이들의 영어 공부를 위해 조금 더 외곽 지역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둥지를 옮긴 미션은 인구 삼만 정도의 조용한 전원 도시다. 슈퍼 스토어에 장을 보러 가면 손님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 보고는 했다. 

 

조그마한 동양계 가족이 올망졸망 카트를 끌며 돌아 다니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생업을 위해 처음엔 병원 내에 있는 커피샵을 인수했다. 그러나 매상이 시원치 않아 얼마 후 매각 하고 지인의 권유로 일식 집을 개업 했다. 

 

경험 없이 시작했던 일이라 온 가족이 죽을 고생을 했다. 모든 장비를 새로 사들이고 인테리어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생각보다 추가 비용이 많이 들었다. 

 

개업식 날은 이례적으로 미션 시장까지 와서 이곳에 멋진 레스토랑을 차려 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갔다. 

 

일년쯤 지나자 레스토랑이 안정 되었고 션과 같은 단골들이 하나 둘씩 생겨 나기 시작했다. 

 

션은 수줍은 성격으로 어쩌다 웨이츄레스들이 말을 붙이면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가만히 웃기만 했다. 

 

션의 주문을 주로 담당했던 제인은 그런 션을 보고 “쟤는 아마 전생에 동양에서 살았을 꺼야” 하고 동료들과 소곤 거리 곤 했다.

 

그 해 오월 '어머니 날' 점심 무렵 션이 빨간 장미꽃 두 송이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한 송이를 당시 홀 매니저를 하던 아내에게 수줍게 내밀었다. 

 

아내가 뜻밖의 선물에 고맙다고 하자 잠시 실내를 둘러 보던 션이 조금 실망한 듯 아내에게 물었다. '제인은 어디 갔나요?' 

 

제인은 저녁 근무라 아직 나오지 않았었다. 션은 잠시 망설이다가 남은 한 송이 장미를 제인에게 전해 달라며 아내에게 주었다. 

 

총총히 돌아서서 나가는 션의 귓볼이 약간 빨개진 듯 보였다. 우리는 그때 알았다. 션이 왜 주로 혼자 왔는지 그리고 우리 집에서 연어요리 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는 걸……

 

그 뒤로 션은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 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서라고 우린 지레 짐작했다. 

 

무덥던 여름이 가고 짧은 가을이 지나고 우린 일상의 바쁨에 묻혀 그렇게 션을 잊어 갔다. 

 

때이른 첫눈이 내리던 11월 어느 날 낯 익은 얼굴 서넛이 가게에 들어섰다. 가끔씩 오던 션의 친구들이었다. 

 

제인이 뜨거운 녹차를 가져다 주며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션의 안부를 물었다. 

 

션의 친구들은 잠깐 당황하는 듯 하더니 제인에게 뭐라고 속삭이며 얼굴이 다소 어두워 졌다.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제인의 얼굴도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션은 지난 초여름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애보츠포드 인근 고속도로에서 폐차될 정도의 큰 사고였다. 

 

병원에 이송될 때 까지는 살아 있었으나 과다 출혈로 수술도중 사망했단다. 

 

몇 달 전 지방신문에 교통사고 소식이 실렸고 션의 이름을 얼핏 본 것 같았으나 동명이인으로 알고 무심히 넘겼던 기억이 났다. 그게 바로 우리가 알고 있던 션일 줄이야……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숨진 션의 어린 영혼이 가여웠다. 숨을 거두면서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한 걸 후회하지나 않았을까?

 

'사람이 죽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으로 간다'고 한다. 션의 애처로운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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