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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6년 만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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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9-12 16:50 조회3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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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을 살면서 후회를 안하고 사는 날이 몇 일이나 될까? 후회되는 일을 하고 나면 그 일을 잊는 데만 몇 날 몇 일이 걸리기도 하고 내내 속 끓이다 그냥 내 속 어딘가에 나도 모르는 웅덩이 하나를 만들어 자리 잡고 있기도 한다. 그러다 내가 잘못한 것인지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기도 한다.
 
그녀와의 사건은 벌써 6년 전 이야기다. 밴쿠버로 이사 온 해가 2005년 8월, 둘째인 딸을 낳은 지 한 달만이었다. 낯 선 환경에서 이제 한 살, 한 달 된 아들과 딸을 데리고 매일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가 이사 온 타운 홈은 새로 지은 단지라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 오고 있었다. 한낮의 햇빛이 뜨거운 8월말쯤, 일요일 아침 바람 좀 들어오라고 대문을 열어뒀는데 자그마한 동양인 여자가 성큼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새로 이사 들어오는 중이라며 자신을 요코라고 소개한 그녀는 우리 집문이 열려있고 동양인인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왔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위층 방에 침대를 어떻게 올렸냐며 자기넨 킹 사이즈인데 계단이 너무 좁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해왔다. 결국 타운 홈의 관리인을 불러 기술적으로 매트리스를 휘게 해 위층까지 잘 올렸단다. 이를 계기로, 또 요 코도 나의 첫째 아들과 같은 또래의 딸이 있다는 이유로 우린 친구가 됐다. 요코네와 우린 참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선 우리 남편과 요코의 나이가 같았고 두 집의 첫 아이들의 생일이 비슷한 시기이고, 우리도 요코네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고, 남편 존까지 중국인으로 동양인이라 서로 잘 통했다. 게다가 존이 김치를 참 좋아해 우리는 함께 식사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크리스마스 즈음엔 요코의 남편 존이 생일이어서 생일도 축하해주며 타국에서 맞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쓸쓸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서로 아이들의 생일도 꼭 챙겨주는 아주 좋은 이웃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나는 요코와 그녀의 딸, 아나를 우리 집에 초대해 함께 점심을 먹었다. 연일 비가 많이 내리는 초봄이었던 것 같다. 밖에서 놀지 못하니 주로 아이들과 집에서 놀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비빔밥을 어머니가 보내준 손으로 직접 빚은 도자기 그릇에 담아 냈다. 한눈에 요코는 그릇이 참 예쁘다며 칭찬을 해줬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도자기전시회에 갔다가 사서 보내주신거라며 나도 참 마음에 든다고 했었다. 그런데 3살이된 아나가 그만 그릇을 식탁 밑으로 떨어뜨렸다. 물론 그릇은 보기 좋게 두 조각으로 깨졌다. 맛있게 밥을 먹던 분위기가 한 순간 차가워졌다. 우선 아나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고 괜찮다, 이미 나도 하나 깨먹었다 하며 아이를 너무 야단치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아나는 긴장한 상태였다. 요코의 얼굴이 편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는 길, 요코는 계속 정말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다음날 부슬부슬 봄비가 오고 있었다. 낮이 되니 빗줄기는 조금 더 굵어진 듯도 했다. 오후쯤 벨이 울렸다. 나가보니 요코가 빗속에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들어오라 하니 아나를 집에 두고 와 들어오긴 어렵다면서 뭔가를 내게 내밀었다. 뭐냐고 물으니 네가 갖고 있는 그릇과 똑같은 것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며 비슷한 것으로 사왔으니 받아달라는 거였다. 잠깐이었지만 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차가 없는 요코가 이 빗속에 겨우 3살된 아나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그릇을 사러 돌아다녔을 생각을 하니 내가 오히려 미안해졌다. 그냥 어린 아이의 실수 일뿐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분명히 괜찮다고 했는데 요코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사과만 받겠다, 너의 마음만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릇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우리 아이가 너희 집에 가서 그릇을 깨면 나도 그릇을 사다 줘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요코는 대답을 안하고 서로 눈빛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혼자 집에 있던 아나가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결국 요코는 대답을 않고 아나가 우는 것 같아 가봐야겠다며 그릇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매일매일 비가 오고 그러다 한달 이 지나도 요코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3살이 된 아이들이 이제 프리스쿨을 가게 돼 그저 바쁘려니 생각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6년간 요코와 아나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일은 없었다. 타운 안에서 오가며 부딪힐 때가 있었지만 그저 '하이' 하고 인사만 할 뿐 그 사건에 대해서는 누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고 않았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무척 조심했다. 예전처럼 서로 함께 차를 마시고 생일초대를 하며 밥을 먹는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그릇을 그냥 받았으며 우린 계속 좋은 관계로 친구가 됐었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이가 그릇을 깼다고 똑같은 그릇을 사서 줘야 한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친구 사이인데. 그리고 어린 아이가 실수할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차라리 케익을 사서 미안하다고 했으면, 난 그 케익을 받았을 거고 함께 나눠 먹었을 거다. 예의 바르고 다정한 친구 한 명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늘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난 듯했다. 특히 친절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요코를 만나는 날이면 그 사건이 내 웅덩이 속에서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요코도 나도 서로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에게 또 한번의 피해를 주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맘이 있는 것 같았다.
 
요코네도 우리도 큰 아이들은 10살, 그 사이 요코는 둘째 아들을 낳고 벌써 그 아이가 6살이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우리 아이들이 동네에서 자전거 타는 일이 많아졌다. 유난히 자전거를 잘 타는 아나와 노는 일이 많아진 셈이다. 그래서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스트리트 피자파티에 초대해 함께 물총놀이하고 자전거 타고 함께 놀게 했다. 7월초 딸아이 생일파티도 함께 했다. 나도 그녀도 6년전처럼 너무 내 생각만 하지는 않는 듯하다. 아이를 둘씩 기르는 엄마이다 보니 조금 더 너그러워졌다고나 할까? 동그라미가 아니라 둥그러진 느낌!  내 가슴 속에 웅덩이로 남아 있던 구멍이 조금씩 메워지는 듯하다. 내침 김에 요코의 남편 존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여름날의 바비큐 파티를 할까 생각 중이다. 아직도 존은 나의 갈비와 김치를 좋아한단다. 그리고 존은 램 스테이크를 참 맛있게 구워낸다.

김상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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