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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6월의 녹음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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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6-22 11:51 조회3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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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아침에 길을 걸으며 나는 마음껏 기쁨을 누린다. 긴긴 겨우내 헐벗은 몸으로 서서 매서운 설한풍에 칼날 같은 추위를 견디느라 비명을 지르며 몸서리치던 나무들이 한결같이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고 청청한 하늘을 우러른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싱그러운 신록을 담뿍 묻히고 달려오는 살가운 바람이 더없이 상쾌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더불어 가슴 설레게 하는 것들에 매료되었다. 바람을 타고 창공을 향해 너울거리는 꽃가루와 민들레 홀씨들이다. 벌써 생명의 잉태를 알리는 뿌연 자부심이 강렬한 생동감으로 넘쳐 난다. 어떤 어려움에 부딪혀도 자연으로부터 부여 받은 일들을 여일 하게 해내는 모습이 경이롭다. 너와 내가 분명하지만, 때로는 서로 모이고 섞이는 모습은 기꺼이 베풀며 생명을 보존하는 숭고함을 깨닫게 한다.

 

나는 지난 2월에 갑자기 시력 상실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왼쪽 눈에 이상이 생겼다. 뿌옇고 섬유질 같은 게 어른거려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꼭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하는 꼴이다. 누구에게나, 특히 늙은이에게는 유고(有故)의 불확실성이 무한대로 기다린다. 별다른 자각 증상은 없지만, 오른쪽 눈만으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책은 물론 컴퓨터를 가까이하기조차 힘들었다. 처음에는 안구 건조 증세인가 싶어 안약을 자주 넣으면 괜찮아지려니 가볍게 여겼다. 사흘이 지나도 조금도 차도가 없기에 안과를 찾았다. 당뇨망막병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높은 혈당으로 망막의 혈관이 손상되어 출혈하는 3대 당뇨합병증의 하나이다.

 

나는 이미 20년 전에 이 당뇨망막병증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오른쪽 눈이었다. 백내장 수술을 하고 나서도 시력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다. 안구 내 혈관에서 피가 터져 망막을 덮기 때문에 다섯 번인가 레이저 치료를 받았다. 그 후로 안경을 썼고 돋보기로 책을 읽었으나 크게 불편 없이 지내왔다. 컴퓨터 작업이나 원고를 쓰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꼭 검안을 받았다. 다행히 20년 동안 그런 대로 무탈했다. 안경 도수에도 변화가 없을 정도로 건안(健眼)이 유지된 편이었다. 그러다가 20년 만에 별안간 다시 탈이 오고야 말았다. 오랜 당뇨 병력에다 노안이고 보면 이 나이를 먹도록 두 눈의 시력이 이 정도로 지탱해 주었음에 아련한 감사를 보낸다.

 

사실 내 눈은 혹사하는 편이다. 책을 읽어야 했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야 했으니 눈이 투덜거릴 만도 하다. 왼쪽 눈의 수술은 한 시간 이상 걸렸다. 눈에 고인 피를 말끔히 닦아내고, 백내장 수술도 겸했다. 그리고 눈 속 터진 혈관을 막기 위한 레이저 치료까지 한꺼번에 해치우는 복잡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수술 경과는 좋은 편이다. 오리려 왼쪽 눈은 수술 전보다 더 환하고 선명하게 보여서 작은 활자도 읽을 수 있다. 지금은 오른쪽 눈까지도 레이저 치료를 받는 중이다. 이 눈은 이미 백내장 수술을 받았고 레이저 시술도 여러 번 했던 터라 간단한 보강 치료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제 양쪽 눈이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은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커서 균형을 잡는 문제가 남았다. 지금까지 사용하는 안경으로는 언밸런스가 심해서 불편하다. 한쪽 눈을 감고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궁색을 떨어야 한다. 치료가 다 끝나면 시력에 맞는 안경을 다시 찾아 써야 한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오고 가는 계절에 맞추어 존재 이유가 뚜렷한 초목들을 누비며 걷는 나그네의 발길이 오늘따라 한결 가볍다. 실명 위기에서 시력을 되찾은 호사에 감격하는 탓인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해서 내가 가는 길이지만 시력이 부실하면 마음대로 발길을 잡기 어렵다. 나그네에게 시력은 절대적 요건이다. 나는 이민생활 28년 차가 되지만 아직도 나그네임을 자처한다. 특히 길을 걸을 때면 언제나 낯선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이민해서 내내 살아온 이 도시의 거리, 차로, 발로 수없이 나다니는 길임에도 문득 언젠가 와 본 듯한 기시감에 잠깐 멀미를 앓을 때가 종종 있다. 나그네가 가진 지병의 일종이다. 지금 이곳에서 신록을 만끽하면서도 이랑마다 파도 치는 고향의 보리밭을 연상하는 망향 병이다.

인간 행복이 무엇인가? 임금님처럼 ‘王’ 자를 달고 나오거나 재벌 2세처럼 금수저를 물고 나오는 것일까? 공연히 소설은 왜 쓰고 있는가. 빙그레 자문하고는 나, 나그네가 나이의 흔적을 녹음에 단단히 동여매 놓고 흥얼거리며 천천히 걸어간다. 녹음은 천 년도 기약하지만, 늙은 나그네에게는 내년의 초록도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마음에 보다 짙은 녹음을 담도록 기도할 따름이다. 갑자기 이런 말이 떠오른다. “초침(秒針)이 하루를 견인해 간다.

 

灘川 이종학 / 수필가,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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