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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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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10-13 05:41 조회4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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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지고 검버섯 성성한 낯선 노인에게 마음이 짠해진다면 그 감정의 근원은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한 연민일 게다. 

관객 수 천오백만 명의 신화를 이루며 한국 극장가에 우뚝 선 “명량”은 내게는 낯선 노인 같은 영화였다. 

사백 이십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참혹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며 대한민국에 뿌리를 둔 사람으로서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었던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명량”은 충무공 이순신의 수많은 전공 중 “명량대첩”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12척의 배로 330척이 넘는 일본 침략선을 격파한 이야기이다. 

한국에선 이미 두어 주 전에 개봉한 영화가 밴쿠버의 극장까지 들어오길 기다리며 인터넷에 떠도는 영화평을 먼저 감상했다. 그런데 몇몇 영화평을 들여다보는 사이 과연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까지 가야 하는 지에 대해 망설이게 되었다. 

관객 수는 신기록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영화평은 그리 신통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심했던 대로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우선, 이순신 역을 맡은 최민식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빈약했다. 적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야 그렇다 쳐도 조선진영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밑그림마저도 흐리멍덩했다. 

최민식뿐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배우들이 나름의 개성을 살리지 못 한 채 서성거렸다. 

시나리오의 개연성도 허점투성이였다. 보는 예술은 설명 없이 보이는 상황으로 관객에게 납득 되어야 한다. 

극 중 인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그들의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물간에 텔레파시가 통하지 않은 이상 실현 불가능했을 아리송한 상황들은 몰입을 방해했다. 또한 ‘명량대첩’에 백병전이 실제로 있었는가 하는 논쟁이 생길 정도로 ‘명량’은 백병전의 묘사에 공을 들였다. 

긴 시간을 할애해 적군과 아군이 뒤섞여 칼에 찔리고, 총알에 뚫리고, 목이 베어져 허공으로 흩어지는 무참한 전투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로 인해 전쟁의 잔인함을 관객에게 확인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백병전 외에 누가 봐도 열세한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다른 전술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감독이 저지른 치명적 실수는 감동을 관객의 몫으로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길고 치열한 전투 장면을 거쳐 종반부로 들어서며 객석에 앉은 나는 슬슬 부담스러워 졌다. 비장한 음악과 스크린 속의 인물은 이쯤에서는 가슴 벅찬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들 때라고 보채고 있었다. 그러나 눈과 마음이 따로 노니 감정이입이 쉽지 않았다. 


허물을 꼬집자면 할 말이 많은 영화였다. 

그럼에도 ‘명량’을 관람하며 영화를 보러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행 성적은 10점 만점, 예술적 가치는 7점 주기도 아깝다는 뒷소리를 하면서도 왜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향하는 지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명량’은 역사책 속에만 머물던 조상들을 관객의 마음속에 성큼 들여 놓았다. 

미숙한 연출로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음에도, 무능하고 이기적인 임금 아래 보호받지 못 했던 민초들의 삶에 무한한 연민을 품게 하였다. 

승전을 거듭하고도 임금에게 치욕을 당하고 다시 전쟁터로 보내져 이용당했던 이순신이란 영웅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과거의 참극이 세월호 참사 이후 분열과 심리적 공황 상태에 있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백 명이 넘는 귀한 목숨이 유명을 달리한 지 넉 달이 지났다. 

열한 명은 시신조차도 돌아오지 못했다. 냉랭한 여론 앞에 허리를 굽히고 굵은 눈물까지 보이며 투명한 진상규명을 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선거철이 지나자 구차한 변명조차 없이 산산조각이 났다. 

민심 또한 식어간다. 

세월호 얘기라며 이젠 지겹단다. 특별법은 세월호 유족들을 위한 특혜로 왜곡되고, 혹자는 배 타고 놀러 가다 죽은 게 무슨 나라를 구한 일이냐고 한다. 내 아이였더라며, 내 아내나 내 남편이었더라면 하고 한 번만 입장 바꿔 생각해도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진 말이다. 

국내적 민심 분열은 해외로 까지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캐나다와 미국 방문을 맞아 교민 사회도 술렁인다. 어제 오타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규탄 시위가 있었다. 

대통령이 자국 교포의 눈을 피해 호텔 뒷문을 이용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같은 시각, 토론토에서는 규탄 시위대와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나란히 서서 한 쪽에서는 “박근혜 퇴진”을 또 한 쪽에서는 “빨갱이는 물러가라”를 외치며 핏대를 세웠다.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속수무책 사고 대응으로 한 순간에 삼백 명 이상이 수장되고도 진실의 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대한민국,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을 잃은 대한민국이 내 눈에는 사백 이십 여 년 전 세상과 달리 보이지 않는다. 선거용 사탕발림이 아니라 진심으로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믿었던 지도자는 이제 스크린 속에만 사는 걸까.

조은주/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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