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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그 놈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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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1-25 02:06 조회4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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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었니?”
“예스 마담.”

메이드에게 몇 번을 물어도 씻었다 한다. 늘 흙투성이 발이어서 정문으로 못 들어오게 하고, 화장실이 딸린 메이드 전용 방에 난 후문으로 들어오게 했다. 들어오면 바로 손발부터 깨끗이 씻고 일을 하라고 했다. 그녀는 흙 집에서 맨발로 살고 출퇴근을 걸어서 다닌다. 그녀의 화장실을 둘러보니 오늘은 물 한 방울 없다. 이런 날은 우리 집에 강아지 발자국 찍히는 날이다.

인도 물은 석회수여서 몇 번이고 깨끗이 씻지 않으면 하얀 얼룩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 집엔 수세미가 4개 있다. 세제로 씻는 것, 헹구는 것, 정수 물로 한 번 더 헹구는 것.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설거지통 바닥과 찌꺼기 낀 거름망 닦는 것. 설거지가 잘 되었나 살펴보다가 가장 더러운 곳을 닦는 마지막 수세미가 물기 없이 건조했다. 먹는 그릇용 수세미로 세균 득실한 곳을 닦은 것이다. 나는 화가 치밀어서 “일을 하려면 똑바로 해.” 하고 수세미를 내던졌다.

거짓말 하는 사람들은 앞에서 잘하고 뒤에서 못한다. 한 번 걸리면 자꾸 의심한다.

일주일간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만 먹었다. 궁궐 같은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아무것도 갖춰진 게 없다. 진작 이럴 줄 알고 일주일 전부터 미리 모든 것을 계약 했었다. 가스통 배달부한테 언제 오냐고 하니, 오고 있다 한다. 정수 물 배달부한테 언제 오냐고 하니, 오후에 온다고 한다. 정수기 설치하는 사람한테 언제 오냐고 하니, 낼 아침 온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안 온다. 오늘 가고, 내일 오고, 모레 와도, 일주일 돼도 안 온다. 진 다 빼놓고 온 식구가 배가 고파 쓰러질 막판에 온다.

한국서 16년 사용하던 냉장고를 가지고 왔는데 문이 고장이나 자꾸 열린다. 기온 50도의 더위인데 큰일이었다. 인디언 친구가 같은 한국브랜드 L전자 서비스기사를 보내줬다.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언제 되냐고 했더니, 낼 아침 분명히 와서 수리해 올 거라고 한다. 아무데도 가지 않고 눈 빠지게 기다린다. 안 온다. 점심 때 전화 한다. 온단다. 안 온다. 저녁 때 전화 한다. 지금 다 오고 있단다. 안 온다. 전화한다. 십 분만 기다리란다. 안 온다. 날 샜다. 그 다음날도 안 온다. 오기가 생긴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전화 한다. 계속 온단다. 안 온다. 그러기를 일주일. 그래도 계속 한다. 온다고 한다. 역시 안 온다. 1년이 돼도 안 온다. 나는 그만 거짓말에 승복했다.

결국 보따리 들고 다니며 손을 봐주는 아저씨가 시멘트와 막대기 하나로 잠깐 뚝딱뚝딱하더니 거짓말처럼 고쳐줘 잘 사용하고 있다.

남편이 인도 온지 1년이 넘자 비자 연장을 하러 이민국에 갔었다. 아침 일찍 갔어도 온종일 기다린다. 단 번에 승낙 받기 위해 며칠 전부터 회사 HR은 서류를 단단히 준비했다. 학교 빠지고 회사 빠지고, 하루 종일 기다려도 허가만 받으면 좋다. 저녁때까지 기다려도 승낙이 안 된다. 서류 하나가 빠졌다고 다시 온 식구를 대동하고 오란다. 준비해서 간다. 한참 기다린다. 또 뭐가 없다고 다시 오란다. 또 간다. 괜한 트집 잡는다. 화가 치민다. 필요한 서류 완벽한데 왜 안 되냐고 따진다. 그래도 다음에 서류 하나 더 가져오란다. 그들은 아무래도 뒷돈을 줘야 바로 해준다는 소문이 맞는 것 같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맹탕으로 버텼다. 오로지 5일을 이민국에 출퇴근해서야 그날 맨 마지막 번호로 허가를 받았다.

이민국 비자가 허락이 안 되는 사이 핸드폰도 끊어지고, 집에 인터넷도 들어오지 않는다. 통신 회사를 방문한다. 사용하던 번호를 버리란다. 언제부터 새 번호로 활성이 되냐고 하니 일주일을 기다리란다. 목 빠지게 기다린다. 그런데 안 된다. 따지러 간다. 오늘 밤에 꼭 될 거란다. 안 된다. 또 간다. 오후에 된다. 안 된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열흘이 가고, 한 달이 가고, 보름이 갔다. 집 기사를 앞세우고 소리친다. 당신들 왜 매번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하냐고. 왜 약속을 못 지키느냐고. 외국인이 그렇게 우습냐고. 나는 더러운 놈들이라고 말하고, 모든 서류를 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 놈의 거짓말들로 금 같은 시간만 다 날렸다. 아무것도 못하고 오로지 거짓말에 모든 걸 바쳤다. 아직도 진행 중인 거짓말은 많다. 이젠 기다리지 않고, 포기한다. 완전히 포기하면 거짓말이 진짜 말이 되기도 한다. 

박성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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