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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1-16 11:56 조회3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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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태중 胎中에서부터 교육을 받는다.

자연스러운 교육이 아닌 의도된 교육이다. 정서 안정을 위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정신과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요가의 흐름도 익힌다. 글로벌 시대에 대비해서 영어 동화를 듣는다. 형편이 되면 시야를 넓혀준다며 휴양지와 유적지를 찾아 다니며 태교여행도 한다. 처음엔 월 단위, 나중엔 주 단위로 초음파 사진을 통해 자라는 모습을 보고 풍덕거리는 숨소리를 확인한다. 빈틈없는 과정을 마치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도 공동작업이다. 분만을 엄마 혼자의 일로 두지 않고 아빠가 탯줄을 자르기도 하며 진통에도 동참한다.

그들은 최초의 음성조차 우렁차다. 예전엔 인간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교육의 덕인지 이들은 바로 눈을 뜬다. 때론 머리를 들려고까지 한다.

첫 돌 무렵이 되면 스마트폰과 조우한다. 쓰윽쓰윽 밀어보며 까르르 웃기도 하고 툭툭 치면서 심각하게 궁리를 한다. 서너 살이 되면 스마트폰은 장난감의 반열에 든다. 그것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율동을 한다. 그러다 조금 더 크면 그 작은 화면에 코를 박고 게임에도 몰두한다.

 

그들이 말을 시작하면 ‘가갸거겨’를 태중에서 익혔는지 바로 문장이 되어 나온다. 간혹 들은 어려운 낱말도 제자리에 눈치껏 끼워 쓴다. 가끔은 엉뚱하게 붙여 박장대소를 끌어낸다. 원하는 걸 취하기 위해 양보와 타협을 할 줄도 안다.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그들과 허투루 약속을 하면 안 된다. 시시콜콜한 기억력이 출중하다. 졸지에 불신의 딱지를 붙일 수도 있다. 그들은 미완이 아닌 한 우주다. 완전하지만 아직 안전하지 않은 작은 우주다. 주견主見이 뚜렷해 요구사항에 차질이 있을 때는 울음과 투정으로 표현하지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도 안다. 떼를 부려 통하는 사람을 구분하며, 반복해서 주의를 주면 말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가족과 주변사람의 중요사항을 숙지하고 있다.

그들의 경이로운 변화 앞에서 우리는 너그러움과 배려를 키우며 웃을 수밖에 없다.

 

딸이 일을 보려 나간 지 한 시간 정도 지났다. 여섯 살 외손자가 휴대폰을 가리키며 “함마니, 엄마 어디 있는지 위치 추적 좀 해보세요.” “난 그런 거 몰라.” “왜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저 난해한 표정은 나를 ‘구 인류’라고 생각하는 걸까. 

 

노정숙 / 수필가,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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