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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5-09 12:24 조회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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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사자성어로‘내로남불’이란 말이 있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 말이다. 인터넷상에서 떠돌고 있는 용어로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한 반면 남의 잘못은 강하게 비판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무엇이든 자신에게 이롭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인간 심리를 꼬집는 한편 상황에 따라 바뀌는 이중적인 태도를 조롱하는 뜻도 있을 테다. 한자 사자성어로는 아전인수(我田引水)와 뜻이 비슷하다. 이런 자기 합리화와 이중적인 행태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오후 산책길 위에 생각거리 하나를 던져본다.

 

 햇살 좋은 바깥으로 문을 나서면 여유로운 풍경으로 발걸음이 느긋하다. 내리막 길부터 시작되는 산책길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타이완 사람이 살던 옆집은 낡은 단층을 허물고 3층 새집으로 공사를 시작한 지 2년이 훌쩍 넘는다. 건축 자금이 부족하여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일을 하는 것인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공사는 진행 중이고 마당에는 온갖 잡풀이 무성하다. 몇 발짝 더 내려가다 보면 고물 수집 일을 하는 듯 낡은 물품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이웃집이 나온다. 스산한 그 집에는 엇부루기 같은 사내아이가 하나 있어 또래들이 자주 모여들고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기척이 날 때마다 귀를 세우고 사납게 컹컹거리는 두 마리의 견공들까지 부산한 집 앞을 성큼 지나간다.

지붕이 낮아 소박한 느낌을 주는 싱가포르 할머니 집을 지나면 시청에서 운영하는 지역 공동체 농장이 나온다. 갓 찾아온 오월의 햇살아래 어느새 작은 푸성귀들이 단맛을 품으며 키자라고 있는 모습에 발걸음은 또 가벼워진다. 푸른 생명들의 기지개에 내 몸도 덩달아 허리를 펴고 당당히 걸어간다. 그러나 대로변에 자리한 장례식장이 뒷길인 좁은 차도를 사이에 두고 공동체 농장과 마주하고 있어 삶과 죽음이 서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새삼 일깨운다. 장례식이 있는 날이면 주차장을 넘쳐난 자동차들이 옆길을 메우고 이웃집 앞길에 멈춰 서 있기도 하는데 오늘은 조용하다. 먼 길 떠나는 누군가가 없는 참 감사한 날이다.

 

이제 발길을 두 번 꺾어 아이비 길로 들어서면 완만하지만 오르막 길의 시작이다. 오른쪽으로 초등학교가 넓게 자리하여 옷깃을 파고드는 봄바람 사이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흩날린다. 왼쪽으로는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는 집집이 아늑하고 평화롭게 앉아 있다. 언덕길의 중간쯤에 나이 든 한국인 부부가 사는 집은 언제나 정갈하게 손질해 놓은 정원으로 오가는 이의 눈길을 잡는다. 오늘은 현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할아버지가 직접 보수하느라 열심이다. 요즘 건축양식의 유행은 건물의 앞면을 돌로 장식하는데 연식이 좀 오랜 집이라 시멘트로 마감한 계단에 얇고 넓적한 자연석을 덧붙이는 작업이 한창인 걸 보니 뜨거운 부동산 시장에 곧 뛰어들 모양이다.

언덕의 막다른 곳은 먼 길 떠난 사람들 음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공원이다. 하얀색 페인트를 칠해놓은 넓고 큰 정문과 좌우 두 개의 옆 문은 늘 열려있어 출입이 자유롭다. 오후의 햇살이 내리는 공원은 발 아래 마을을 감싸 안고 더 아래 넓은 도시의 중심부까지 훤히 바라보고 있다. 따스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좁은 소견에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는 생각을 하며 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보는데 다양한 음택의 모양이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한다. 벽에 들어간 양 손바닥만한 납골당부터 큰 나무아래 넓적한 묘비를 세우거나 땅바닥에 작은 동판을 박거나 고급스런 대리석을 박은 납골당까지 다양하다. 땅 밑에 관을 넣은 묘의 외관도 보잘것없이 초라하거나 화려하고 거추장스럽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집도 천차만별이지만 떠난 사람의 집도 모두 한결같지 않다. 인근 마을 공원묘지에는 땅 위에 고층 아파트처럼 큰 칸막이를 층층이 만들고 관 자체를 집어넣는 양식의 묘를 엄청 비싼 값으로 분양 중이다. 길 떠나는 사람의 유지와 남은 가족의 의지가 어우러져 만든 시대의 풍속도를 보는 듯하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다시 내리막 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늙은 자목련 한 그루 우뚝 서 있고 서양 영산홍이 활짝 핀 이웃을 지나야 한다. 영산홍이 활짝 피어 있을 땐 그 큰 꽃이 보기 좋으나 맥없이 떨어진 꽃잎을 보는 일은 목련 꽃이 쓰러질 때처럼 쓸쓸하기 짝이 없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한 때의 아름답고 화려함은 어느 순간 스러져갈 것이 분명하다. 오후 산책길이 내리막과 오르막을 지나 다시 내리막을 만나는 것처럼 사람의 인생길도 굴곡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는 것이 당연하다. 누구나 한번 산에 올라가면 언젠가는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철리哲理를 잊고 저 혼자 정상을 차지하고 힘을 휘두르겠다는 탐욕 때문에 억지를 부리고 망발을 일삼는 사람이 주변에 널려있다. 그들에게 진정 해주고 싶은 말이 요즘 유행하는‘내로남불’이다.

초파일 즈음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한마디는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지혜의 등불로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세상을 밝히는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한 사람이요, 욕심이 적어야 행복한 사람이요,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실천하는 일상을 언제나 꿈꾼다.

내 삶의 로망은 세상풍파에 끄떡없는 지혜로운 마음이다. / 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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