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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내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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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8-23 12:02 조회4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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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는 네 집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우리 집은 그 중에 세 번째 집이다. 두 번째 집과 세모꼴 지붕을 함께 이고 있어서 밖에서 언뜻 보면 큰 집 한 채처럼 보인다. 자연히 양쪽 집 차고 사이에 낀 디귿자 모양의 반듯한 앞마당도 반씩 소유하고 가꾸게 되어 있다.
 
옆 집 주인 한국인 부부는 우리 보다 몇 년 전부터 살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시간을 고국에서 지내기 때문에 봄에 거의 정원을 돌볼 수 없는 사정이다. 그래서 내가 자원해서 옆 집 꽃밭까지 맡아서 가꾸기로 했다. 그렇게 함으로 거짓말 보태 손바닥 만한 꽃밭에 내 마음대로 꽃을 배치해서 두 집을 커다란 한 집처럼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다가 걸어 놓는 꽃바구니들도 색깔과 종류를 같은 것으로 해서 마주 보게 하고, 차고 벽에 붙은 창틀 화분과 입구 쪽 화분에도 같은 종류로 심어서 마주하게 하니 한 집 솜씨인 것이 분명히 보인다.
 
작년 봄엔 낯 설은 풀잎이 우리 집 쪽 디딤돌 옆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잡초라고 생각되어 그냥 뽑아버릴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며칠 두고 보았다. 거름을 특별히 하지도 않았는데 그 땅에서 제게 맞는 영양분이 있었는지 이 이름 모를 풀이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빈 자리를 채워 주는 목적으로라도 신통해서 한동안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하루는 분꽃 봉오리 같이 생긴 꽃봉오리가 뾰족이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너무 신기해서 며칠 동안 유심히 관찰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봉오리가 커지면서 어느 날 저녁에 나팔꽃 모양의 노오란 꽃이 피었다. 그 뿐 아니라 내 무릎 만한 키의 몸체에서 옆 가지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하마터면 잡초로 오해 받고 뽑혀졌을 이 신기한 풀이 대체 무엇일까?
 
여름이 짙어가면서 키는 내 허벅지까지 자라고 옆 가지들도 여기저기 나와서 건강미를 자랑하며 잎 겨드랑이마다 쉴새 없이 꽃을 피워냈다. 어느 날 집에 방문객이 들어오다가, "어머, 이거 달맞이꽃 아니야?" 하는 바람에 그것이 달맞이꽃이라는걸 비로소 알게 됐다. 그러니까 달을 맞이하느라 저녁에 피고 아무도 보지 않는 밤 동안 오로지 달을 바라보며 피어 있다가 아침이면 모두 얌전히 꽃잎을 닫고 있었나 보다. 
 
칠레가 원산지인 달맞이꽃(Evening Primrose)은 '기다림, 말 없는 사랑' 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알고 보니 의학적으로 우리 몸에 좋은 약효의 성분도 지니고 있다 한다. 야생화로 들에 많이 피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어찌하여 한 번도 본 적이 없는지! 씨를 받아서 올해에도 심어보고 싶었지만 날씨가 씨앗을 여물게 해주지 못해서 실패했다. 시들은 꽃잎들은 그냥 따버리기가 아까워서 작은 병에다가 차곡차곡 담아서 설탕을 넣고 효소를 만들어보았다. 제비가 물고 왔던 흥부네 집 호박씨처럼 혹시나 어디서 또 씨가 날아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달맞이꽃 노래도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이용복 가수와 김 추자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기도 했다. 꽃의 말처럼 애절함을 느끼게 했다. 또 달맞이꽃 동호회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난 오 월에는 대학교 졸업 오십 주년 재 상봉 행사에 참석차 고국을 방문했다. 행사가 끝나고 소요산 자락에 살고 있는 절친한 친구가 한 무더기의 친구들을 초청해주었다. 동기동창인 그의 남편은 오래 전 아무도 미쳐 생각도 못했고 그럴 능력도 없었을 때 그곳에 일만 평의 넓은 터를 사가지고 삼십 년에 걸쳐 손수 조경을 하고 십 년 전에는 살림 집도 본인이 설계해서 지어 놓고 은퇴한 후부터 그 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야산을 파헤치니 자연 바윗돌이 많아 조경에 이용할 수 있었고, 보기 좋게 자라 있는 나무들은 사다 심은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손가락 만한 작은 나무들을 볼 때 마다 하나씩 옮겨다 심어 키운 것이라 했다. 전문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손수 꾸민 동산에서 다과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런 친구 부부의 성실한 삶이 그 지역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았다.
 
내 꽃밭, 비록 손바닥 만할지라도 어디선가 단풍 씨가 날아와 붉은 색 둘과 녹색 하나가 자라고 있는 것을 얼마 전에 발견 했다. 전에는 생각 없이 뽑아서 버렸었는데 나도 이것을 잘 옮겨서 키우면 단풍이 행복해서 나를 보고 눈짓을 할 것 같아 화분에다 떠 옮겨놓고 매일 드려다 보며 소요산 친구 부부를 생각한다.
 
지난 봄에는 사랑하는 후배가 총각단추(Bachelor's Buttons)라는 꽃의 씨를 한 봉 주어서 뿌리고 또 교회의 집사님 한 분이 난쟁이 코스모스(Dwarf Cosmos)씨를 주어서 뿌려 놓았다. 총각단추는 꽃의 모양이 단추같이 생겨서 부친 이름인데 왜 '총각'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보라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져서 약 45센티의 키로 자라 있다. 코스모스도 꽃밭 크기에 맞게 짤막한 키로 자라서 지금 꽃 몽우리를 맺으며 너 댓 개 피고 있다. 요즈음 날씨가 너무 더워서 시원한 물을 매일 저녁 실컷 먹여준다. 오늘은 영양제도 먹여주었다. 지나다니는 이웃들에게서 정원이 참 아름답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에 허리 아픈 것 잊고 내 꽃밭을 가꾸게 된다. 참 즐거움이다. 이 무더위가 지나가고 나면 꽃씨를 선사한 친구들을 불러서 차라도 같이 마셔야겠다.

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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