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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동화 - 아빠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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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4-13 11:15 조회3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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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가뭄으로 산에서 담장 밑으로 흐르던 물은 마르고 군데군데 물웅덩이 흔적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노인의 심 박동 소리 같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담양 소쇄원에서 낮잠을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는 실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아침 그곳에 아빠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어 나는 벽체 없는 마루에 큰‘대’자로 누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있으니 누가 필기구 가방을 가져갈지도 내 몸을 만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소리는 없지만 담 벽 같은 아빠가 있어 나는 공공장소에서도 충분히 행복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시냇물 소리 박자로 지저귀는 작은 새들의 노래에 살며시 잠이 깬 나는“제 애들이 내가 동화작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지요.” 라고 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일어나려다 말고 나는 내 체온으로 따뜻해진 소쇄원 마루에 깊은 잠에 빠진 척 그대로 눈을 감고 몸을 산 쪽으로 돌렸습니다. 내 뒤척이는 모습에“바로 이 아이인가요?”라며 기자님이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네, 동생은 UBC교수와의 멘토쉽 때문에 이번에 귀국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향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 녀석이 바로 절대 서두르지 않는데, 올해는 두어 달이나 세상에 빨리 나온 천상의 치자 향기랍니다.

”아빠는 공공장소에서 잠든 나의 흐트러진 모습이 사진기자님께 잡히는 모습은 상관하지 않다는 듯이 내가   깨어날까 봐 속삭이듯 화제를 꽃 향기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좀 냄새를 잘 못 맡아서요. 그런데 저렇게 어른만한 아이가 지금도 동화를 들려달라고 하나요?” 기자님이 약한 후각을 쑥스러워하는지 마는지 하면서 아빠와 자장가를 주고받듯 낮은 음으로 물었습니다.

“수년간 아이들과 떨어져 살다 보니 아빠에 대한 추억도, 아빠가 들려준 수백 편 즉석동화마저 깡그리 잊어버리고 심지어는 밤마다 동화를 들려줬다는 사실마저.” 반복어법을 싫어하는 아빠가 겨우 대답을 마치자 기자님이“아, 아이들께 해준 이야기를 누워버린 기억들로부터 일으켜 세우기 위해 동화를 쓰시는 군요.” 라고 성급히 말했습니다.

누워 있는 내 모습이 찍힐까 봐 이때쯤 일어날까 싶었는데 아직 대숲정령이 찾아오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소쇄원에서 잠을 자는 동안에 찾아온다는 그 정령이   카메라의 섬광 때문에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기자님들이 빨리 돌아가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는 그대로 다시 오지 않지요. 하지만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더 좋은 동화가 탄생할 수는 있겠지요.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그대로 살아 돌아오기를 희망합니다.”

아빠는 마치 양산보라도 된 듯이 차분하게 기자님을 대하고 있었습니다.“그래도 독자들은 놀라고 있습니다. 

최단시간에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른 경제 분야 책의 후속 탄을 경제가 아닌, 동화로 터뜨렸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혹시 더 이상 경제를 낙관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를 떠나는 것은 아닌지요?” 중년 저음의 취재기자님이 추수 끝난 논두렁에서 황금 능구렁이로 자란 미꾸라지를 노련하게 모는 농부처럼 자신이 쳐놓은 통발 속으로 아빠가 들어가 주기를 바라듯이 물었습니다. 

“경제를 떠나다!” 아빠는 숨 한번 크게 몰아 쉬고는 들리기는 할 정도로 작게 속삭였습니다.

“사람이 경제를 떠나 살수 있다고 생각하세요?”아빠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큰 소리로 되받았습니다. 기자님이 궁금해 하는 것을 알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아빠의 말만 계속되었습니다. 

아빠는 자신의 책에서 실마리는 찾을 수 있어도 구체적인 답을 얻지 못했을 독자들에게 두 번째 책은 동화를 쓰고 세 번째 책에서 구체적인 답을 실험해보고 나서 가정경제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담아낸 책을 쓸 예정이었던 것입니다. 
       
 “책은 다양해야 좋을 것 같은데요. 한 번 읽고 다시 안 볼 책도 나름대로 역할이 있지 않을까요?”기자님이 정색을 하며 반박했습니다. 아빠도 질세라 “그냥 읽고 버릴 책도 만들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글이라는 것이 그렇게 가벼워도 되는 것이라면 아무런 글도 쓰지 않을 겁니다.”라고 단호하게 응답 했습니다. 분위기가 격앙되어간다 싶었던지 기자님이“그러니까 선생님 생각은 식영정, 환벽당, 면양정이 각자 소쇄원과 다른 이야기를 불러내듯이 모든 책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라고 하며 질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아빠는 이야기책이 독자에게 생각을 자아내게 하듯이 자기개발서는 실지 도움이 되는 내용의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의 핵심인 돈의 법칙을 건드려 누구나 풍요롭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되도록 하는 글을 쓰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동화를 쓰면서 재무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캐나다의 한 금융컨설팅회사 에서 온 몸으로 돈의 법칙을 구현해 보고 나서 독자들 누구나 경제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할 방안을 담은 책을 쓰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사이에 기자님들은 가고 나와 아빠만 남아 있었습니다. 대숲정령을 기다리는 나를 잊어버리고 나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끝났구나. 작가와의 대담.”“음 방금”아빠는“​어린 아들 나를 맞이하여 손잡고 방으로 들어가니 항아리에 향기로운 술 가득하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르고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니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지 않겠는가.”라고 귀거래사를 시조처럼 읊조리다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술과 아들 빠진 시는 없나. 좋아 아빠, 창평국밥집에 가요. 제가 아빠 친구아들들처럼 아들이 되어 드릴게요.”오늘 만큼은 아들 없는 아빠가 불쌍해 눈물이 핑 돌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내가 아빠의 친구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 순간 치자향기를 타고 대숲정령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딸아, 가방이 왕버들 군락지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 때까지 가방이 없어졌다는 것도 대숲정령이 다녀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빠와 함께 소쇄원아래 충효동 왕버들 군락지를 들러 그 국밥 집에 왔습니다. 가방에는 감미롭고 신비로운 치자 꽃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노트는“아빠의 책으로 인해 어른들은 동화의 세상에 빠져 아이들처럼 즐겁고 아이들은 돈 걱정 없는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될 거야.”라고 흰색 치자 꽃잎 바탕에 붉은 왕버들 꽃잎 글자가 수 놓여 있었습니다.


박병호/ 캐나다 한국문협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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