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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모닥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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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7-18 11:56 조회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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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했던 포트 맥머레이*의 불길도 몇 번의 빗줄기가 지나 가고서야 이젠 잠잠해졌다. 산불위험 경고를 알리는 표지판의 표시도 오렌지 색 중간레벨에서 초록색 낮음으로 바뀌었다. 해마다 이 곳 밴쿠버 날씨는 기온이 올라가, 비가 많이 오지 않고, 건조했다. 산불 위험경고가 높아져 캠핑 장에서 불을 피우는 건 불가능했다. 몇 년 째 모닥불을 피우지 못해 아쉽고 서운했던 여름을 보냈다. 올해는 캠핑날짜를 앞당겨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대로 바로 가기로 했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생활한다는 상상만으로 멋지고, 신나고, 한껏 들뜬 기분이었다. 캠핑 장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연휴를 이용해 휴가를 떠나는 차량행렬로 길게 늘어섰다. 차도 양 옆으로 넓게 뻗은 농장과 푸른 들판은 신선한 공기와 가축들의 분뇨 냄새가 어우러져 시골풍경을 한껏 느끼게 했다.

 

드디어 캠핑 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모닥불 놀이를 할 본격적인 준비를 했다. 장작 나무를 태우기 쉽도록 도끼로 잘게 쪼개고, 차곡차곡 몇 개를 쌓았다. 불쏘시개 나뭇가지와 신문지에 불을 붙였다. 불이 꺼지지 않게 타는 연기를 참아가며 바쁘게 부채질을 하고, 입으로 ‘후 우, 후 우’ 하며 바람을 불어냈다.

 

잠시 후 작은 불꽃이 일어나며 쌓은 장작더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예전엔 이렇게 군불을 때고,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음식을 만드는 게 하루 일과였을 텐데. 라이터 점화나 가스레인지 스위치를 돌려서 쉽게 요리를 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 이었을 거다. 때론 편리하기만 한 세상보다 시간이 느리고, 더디 걸리고, 불편했던 옛 시절이 더 그리울 때가 있다.

 

금새 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 졌다. 아이들은 긴 꼬챙이에 마시멜로 꽂아 굽고, 은박지에 싼 감자를 불 더미 속에 넣어 구워 먹었다. 야외에서 먹는 음식은 어느 때보다 더 맛이 나고, 손이 더 간다. 모닥불이 꺼지지 않는 동안 먹고, 떠들고, 다시 먹고 이야기 하기를 반복한다. 모닥불을 바라보면 어릴 적 수련회나 야외 캠핑 장에서 놀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옛날 가요에 나왔던 가사처럼 모닥불을 피우며, 여럿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술잔을 기울이며 주고 받는 얘기 속에, 술기운 탓인지 불기운 때문인지 얼굴이 조금씩 달아오르고, 이야기는 더욱 깊이와 공감을 더해간다.

 

장작 타는 소리는 고요한 밤을 가르고, 자연이 숨쉬는 소리 같다. 멍하니 타고 있는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타는 장작 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불꽃이 점점 작아져 꺼져 갈 때 즈음, 다시 장작개비 하나를 더 집어넣자 불이 옮겨 붙으며 다시 불꽃이 활활 일어났다. 장작 더미 속에서 타 들어 가며 변화하는 불꽃처럼 우리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내 인생을 기억해 보며, 화려했던 순간들과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모닥불을 태우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르다. 어떤 이는 주어진 땔감을 커다란 불꽃으로 화려하게, 짧은 순간에 금방 다 태워 버린다. 어떤 이는 작은 불꽃이지만 조금씩 타 들어가도록 오랫동안 불을 유지하기도 한다. 때론 예상하지 못한 일도 발생하기도 한다. 어떤 순간에는 커다란 불꽃도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금방 꺼져 버리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예기치 않은 바람이 불어와서 꺼져가는 불길을 다시 살려 내기도 한다.

 

불은 주어진 땔감이 다 할 때까지 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 모닥불의 불꽃은 꺼질 듯 하다 때론 화려하게, 때론 은은하게 마치 저마다의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마음의 불꽃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여전히 남아있다.

 

여름이 시작되는 칠월, 나의 불놀이는 화려하고,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되었다. 내 인생에서 아직 꺼지지 않고 남은 불씨가 다시 커다란 불꽃이 되는 꿈을 꾼다. / 정재욱,  캐나다 한국문협

 

*포트맥머레이 (Fort McMurray): 캐나다 앨버타 주에 있는 산유도시로 대형 산불재난이 났던 지역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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