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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백 번 천 번 잘못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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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6-27 12:11 조회4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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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잘못한 일은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시간은 모른 체 하며 앞으로 앞으로만 내 달린다.

 

정말 미안해. 너의 말을 무시하고 의사 말만 들어서. 참 나쁜 엄마, 못 된 엄마지. 네가 그렇게 싫다고 애원했는데. 엄마가 잠깐 미쳤었어. 그 의사란 사람도 악마같이 보였을 거야.

 

6년간 간절히 기도해서 얻은 너. 너를 건강하게 낳기 위해 나쁘다는 건 한 방울도 먹지 않고 배제해서였는지 너는 튼튼하게 잘 자라 주었지. 그런 너를 안고 젖을 먹이다 어느 날 문득 그 작은 입안 잇몸에서 새싹처럼 돋아난 하얀 젖니. 엄마 아빠는 감탄하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너의 성장에 기뻐했지. 그리곤 그 솟아난 젖니는 엄마 젖을 빨면서 젖꼭지를 깨물어 대곤 했지. 아파서 아야, 하면 좋아라 하며 젖니를 내놓고 방긋방긋 웃어주고 재미있어서 자꾸 장난치고. 참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날들이었지.

 

행여나 그 예쁜 젖니가 상할까 이유식을 먹이기 시작할 때부터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네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엄마는 열심히 양치질을 해주었지. 엄마가 치과를 지겹게 다닌 적이 있어서 너만은 그런 고생 안 시키고 싶어서였지. 그래서 네 치아는 건강하게 잘 있었지. 그런데 그런 엄마가 한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네게 불행을 안겨줬구나.

 

너의 사랑스런 첫 번째 젖니, 영구치 결손으로 여태까지 마지막 버팀목이자 희망이었던 그 젖니가 엄마 때문에 뽑혔으니. 오로지 의사 말만 믿고, 돈에 눈이 먼 그의 말만 믿고. 스마트폰으로 딴 짓 하면서 내 새끼의 큰 고민거리 영구치 결손에 대한 검색을 왜 안 해 봤는지. 써먹을 때까지 썼어야 했던 이였는데.

 

이곳 인도와 한국의 교정전문의, 유명한 의사들을 찾아가 어떻게 해야 좋으냐고 물어 보면 하나같이 지금 빨리 빼서 빈 공간을 메우는 게 좋다고 한 말. 나중에 빼면 보철을 해야 한다는 말만 믿었어. 내 새끼 나중에 보철하느라 힘들까 봐 엄마 맘대로 뽑으라고 했어. 교정 전문의가 계속 빼라고 종용한 것도 있었지만. 안 뽑겠다고, 싫다고, 이대로 꿋꿋하게 오래 간직하며 살겠다는 너를 뿌리쳐서 미안해. 너의 의견을 존중치 못해서 미안해.

 

이를 빼고 나서 놀란 너의 표정, 괴로워하는 너의 몸짓, 아 생각만 해도 가슴에 비수가 꽂힌다. 5분 후 진료실 앞에서 만난 40대 아줌마가 튼튼한 자기 이를 보여주며 하는 말, “나는 아직도 유치 사용해요. 왜 뺐어요?”. “엄마, 그러게 왜 뺐어, 왜 뺐냐고?” 어떡해, 어떡해. 아, 다시 5분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절대로 빼지 않았을 걸. 엄마는 죄인이 된 듯 했어. 얼마나 가슴이 뜨끔하던지.

 

너의 그 사랑스런 젖니는 양 옆의 이가 튼튼한 기둥처럼 지키고 있어 안전하게 잘 버티고 있었는데. 아가처럼 여리고 예뻤는데. 네가 늙을 때까지 사용할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는데. 절대로 안 뽑을 거라고 말했는데. 그래, 어쩌면 30년 아니 더 오래 쓸 수도 있었는데.

 

절망하는 너를 데리고 집으로 한참 달리다가 너의 뽑힌 이를 꺼내봤어. 엄마는 순간 경악 했어. 뭐에 홀렸던 거야. 너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그 때 또 한 번 알게 됐지. 너의 젖니는 다른 젖니보다 잘 버티어 보려고, 영구치 대신 남아 있으려고, 오래도록 네 곁에 있으려고 뿌리가 길었던 거야. 그래서 당장 차를 돌려 병원으로 달려가 원장 나오라고 불러댔지. 너희 의사가 실수 했다고, 어서 내 새끼 이 원상복구 하라고. 미친 듯이 주문했지. 한 순간이 한 시간처럼 길고 긴 기다림이었어. 원장이 네게 오기까지는.

 

이미 신경 끊어진 이가 다시 되살아나길 바라면서 똑같이 심어 놓으라고. 책임지라고. 너는 좀 안심이 되었는지 “엄마, 나 이 이빨 다시 살릴 거야, 절대로 안 뺄 거야.” 너는 꼼짝 않고 그 빠졌던 젖니를 잇몸에서 못 빠져 나오게 고이고이 지키며 문을 잠그고 있구나.

 

“그만 슬퍼하자 얘야. 검색해보니 열 명중 한 명꼴로 영구치 결손이란다. 어떤 애는 어금니, 사랑니, 두 개, 네 개, 그 이상도 없대. 너는 겨우 아랫니 한 개잖니. 교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위아래 생니를 몇 개씩 뽑기도 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니. 나중에 잇몸에 못 박듯 임플란트나 다른 보철로 고통 받을 일도 없고.”

 

“엄마, 난 내 젖니 오랫동안 지키고 싶었다고, 대체 왜 행복하게 잘 있는 남의 이를 뽑았냐고, 왜 걱정거리를 만드냐고.” 그래 미안해. 난 너를 위해서 미리 대처를 한 건데. 너는 아기 때를 추억하며 소중한 보물로 간수하고 싶었나 보구나.

 

이제 겨우 14살 사춘기 소년 내 새끼. 그러잖아도 감수성이 예민해 어쩔 줄 몰라 불안해하는 너에게 희망과 의욕마저 상실케 했구나. 신중치 못한 엄마를 용서해다오. 물 흐르듯 그냥 놔둘 걸. 미리 걱정하지 말 걸. 되는대로 살 걸.

 

우리 그냥 엄마가 신뢰하는 의사 말만 믿자. 긍정으로 받아들이자. 슬퍼하면 슬퍼할수록 슬픔은 커지고, 한탄에 한탄만 하면 한탄스런 삶이 돼. 그만 훌훌 털어버리고 잠근 문 박차고 나와라.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 문 잠그고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말도 안하고,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어서 나와 내 새끼 얼굴 좀 보자. 네가 엄마를 외면할수록 엄마의 가슴은 한없이 그 때 그 순간을 중단 못 시킨 것에 대해 탄식한다.

 

정말 미안해. 백 번 천 번 미안해. 그러나 엄마는 믿는다. 이 순간이 지나면 엄마의 행동이 결코 후회되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우리 그렇게 긍정하자. 꿈과 희망, 의욕 다시 심어보자 네 얼굴에!

 

박성희 / 카나다 한국문협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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