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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비눗방울 부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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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6-06 11:48 조회4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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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역 5번 출구, 어디선가 크고 작은 비눗방울들이 날아오고 있다.

 

마치 꿈속에서 보는 새들처럼 하늘하늘 춤을 추며 다가온다. 난 잠시 환상적인 분위기에 싸여 서 있었다. 누구일까?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는 이는. 비눗방울이 날아오는 쪽을 바라본다.

 

한 노인이 서서 비눗방울을 불어 대고 있다. 바닥에는 조그만 깔개 하나, 노란색 플라스틱 장난감 대여섯 개가 고작이다.

 

노인은 연신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지만 그것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어보는 이도 얼마라는 가격표시도 없다. 지하철 계단을 오고가는 사람은 많아도 비눗방울 따위엔 관심이 없는 얼굴들이다.

 

노인은 왜 유독 어른들의 왕래가 많은 이곳에서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을까? 혼자 앞에서 바라보기도 그렇고, 그걸 사는 건 더 그렇고, 앞 건물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 장면을 오래 지켜보고 싶어서다. 나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서서 유리문 너머로 앵글을 맞춘다.

 

노인의 양 볼이 볼록해지자 방울들은 유치원에서 파한 아이들처럼 벙글거리며 몰려나온다. 내 마음도 잠시 살랑거린다. 나는 가만히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모아 빨대를 잡는다. 눈을 감은 채 입을 오므리고 후우- 방울을 밀어낸다. 나는 몸이 작아져 예닐곱 살쯤으로 돌아간다.

 

상고머리에 멜빵치마를 입은 아이 하나가 무지갯빛 비눗방울 속에서 동실동실 어우러진다. 비닐 컵 안에 대롱을 꽂고 입김을 불어넣자 보글보글 거품이 피어오른다. 병아리처럼 물 한 번 찍고, 고개 들어 하늘 보며 푸우- 내뿜는다. 어깻죽지를 스치던 부끌래기 하나가 눈 깜짝할 새 사라진다. 뺨에 닿아 톡 터지는 새뜻한 감촉에 천천히 눈을 뜬다.

 

대롱에 매달린 하품만큼 커진 방울 하나도, 돌아갈 수 없는 아이도 모두 한순간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인가.

 

유리문 밖에서 노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듯하다.

 

 “아, 이제 들어가야겠다”

 

그러면서 또 비눗방울을 불어댄다. 아니, 들어갈 마음은 애당초 없는 것 같다. 계속 불어도 사는 사람이 없어 민망해선가? 노인은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만 팔고 있다.

 

어쩜 노인은 <알라딘과 요술램프>의 호리병 속 '지니'처럼 아무도 모르게 투명한 방울 집으로 사라지는 건 아닐까. 늦은 밤 인적이 뜸해질 때쯤 슬그머니 비밀의 커튼을 열고 ‘통 할아버지’처럼 몸을 구겨 넣는다. 그러다가 밤의 정령들이 숨겨놓은 아침이 보자기를 풀고 나오면 비눗방울을 터뜨리고 시침 딱 떼며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그 자리를 뜬다.

 

아무래도 노인은 동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어디선가 공수해온 꿈의 비눗방울들을 하나 씩 분양해 주러 온 꿈의 메신저는 아닐까?

 

/ 수필가,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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