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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센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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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세익기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8-17 12:37 조회4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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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우연히 24절기(節氣)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입춘(立春), 대서(大暑), 처서(處暑), 대한(大寒) 등과 같이 계절의 변화를 24등분하여 나타낸 것으로 예전부터 농사를 짓는데 유용하게 쓰였다고 한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이 음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절기 또한 당연히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기후 변화를 24개로 구분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라 아내도 이건 못 맞출 거라 생각하고 물어보았다. “당신, 달력에 나와 있는24절기가 양력을 기준으로 한 건지, 음력을 기준으로 한 건지 알아?” 아내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하지(夏至)나 동지(冬至)가 해가 가장 짧을 때랑 가장 길 때이니깐 아마 양력일 것 같은데.” 내가 처음 의도 했던 것처럼 음력이라고 대답할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정확히 답을 맞추는 게 아닌가.“와, 당신 제법인데. 정말 똑똑하네.”라고, 칭찬을 해주자 아내는 “그건, 똑똑한 게 아니고, 센스가 있다는 얘기죠.” 라고 얘기를 한다. 
 
내가 보기에도 뻔한 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었을 터라 조금만 달리 유추해 보면 쉽게 맞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저녁, 날씨가 덥다고 아내가 메밀국수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국수를 삶는 냄비 그릇 옆에 얼음이 동동 떠있는 짙은 갈색 음료수 같은 게 들어있는 물병이 보였다. 
 
땀이 뻘뻘 날 정도로 더운 날씨 탓에 몹시 갈증이 났던 내겐 영락없는 커피로 보였다. “저건, 덥다고 냉커피 만든 거야?” “저게, 냉커피로 보이십니까? 
 
지금, 메밀국수를 삶는 거 안 보이시나요?  메밀국수에 넣을 간장육수를 만들어 놓은 건데. 센스가 좀 있으셔야죠.” 아내의 말대로 순간 센스가 없는 남자로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감각이 좀 둔한 편인 것 같고, 센스가 별로 없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아내가 냉장고에서 무엇을 갖다 달라고 할 때에도 못 찾아서 한참을 이리저리 헤매는 데, 아내는 단숨에 찾아 끄집어 낸다.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건 불가능하고, 한 번에 한 가지씩 콕콕 집어서 말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하질 못한다. 
 
그런 나와는 달리 아내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그것도 동시에 머릿속으로 판단하고 처리한다.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보았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뭐해?” 라는 하는 말 속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고 했다. 
 
그 말은 아내가 남편이 지금 정말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는 것이 아니라, 식사 준비하는 걸 같이 도와달라는 뜻일 수도 있고, 아이들을 좀 봐 달라는 것일 수도, 식탁을 정리하고 밥 먹을 준비를 하란 얘기일 수도, 설거지를 해 달라는 것일 수도,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를 봐 달라는 말일 수도, 아니면 쓰레기를 좀 버려달라는 말일 수도 있다.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걸 척척 알아서 해 준다면 센스 있는 남자가 되겠지만, 종종 아내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전혀 다른 행동으로 응답을 하게 되면 뿔난 아내의 잔소리와 함께 센스가 없는 남자로 전락하고 만다.
 
‘센스’란 말이 영어에서 온 말이지만 요즘엔 여러 가지 뜻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그냥 사전적인 의미로는 감각이라는 뜻이지만, ‘센스가 있다’는 말은 눈치 있게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일일이 말로 얘기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챙겨 주고, 배려 해 주거나 겉으로 보기에 산뜻하고 세련되게 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센스가 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제부터라도 아내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면 센스 있는 남자로 등극할 수 있을까?
 
정재욱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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